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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병원의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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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Z Apr 28. 2020

차이니스 레스토랑 신드롬

오래된 친구

차이니스 레스토랑 신드롬; 빠른 심장 박동 및 졸음과 같은 다양한 증상을 특징으로 하며 음식의 조미료에 들어있는 모노 소듐 글루타메이트에 의해 나타나는 중국 음식과 관련된 증후군(Wikctionary에서).


 처음 짜장면을 먹어본 것은 을지로에 있던 아버지의 직장 근처 중국음식점이었다. 주인이 화교인 그 당시에도 꽤 유명한 음식점이었다. 어느 봄 토요일 오후 아버지와 나는 마주 앉아서 짜장면을 먹었다. 서툰 솜씨로 짜장면을 비벼대는 나를 대신해서 아버지가 짜장면을 비벼 줬다. 갈색의 끈적거리는 면을 젓가락에 감아 처음 입에 물어 넣었다. 정말 맛이 없었다. 면발이 입안에서 헤엄치듯 목구멍을 향해 들어가는 식감도 싫었고 국수가 달콤한 것도 낯설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집에 와서 종일 잠을 잤다. 움직이려고 해도 몸에 기운이 빠지면서 구름 속을 걷는 것 같았다. 물론 그 후에도 나는 짜장면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 생일파티에 초대되거나 어른들과 중국음식점에 가면 나의 의견과 상관없이 모두들 짜장면을 시켜주었다. 짜장면을 먹은 날이면 나는 쓰러져 잠을 잤다.

 

 대학생이 되면서 나는 짜장면을 더 싫어하게 되었다. 하숙집 주인 때문이었다. 내가 살던 하숙집은 밤이 되면  냉장고를 자물쇠로 잠그는 것과 시험공부를 하고 있어도 그 집 아이들이 아무 때나 내 방에 들어와 TV를 보는 것, 화장실 물을 누르면 1/3 확률로 내려가는 것, 봄가을이면 하수구에서 냄새가 올라와 집을 뒤덮는 것 이외에는 완벽한 집이었다. 어느 해 엄청 더운 여름이 지나며 새로운 단점이 추가되었다. 여름을 못 견디고 병을 앓던 아주머니의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흔하다는 재산분쟁이 시작됐다. 정기적으로 하숙집 안방에는 그 집 친척들이 모여들었고 모이면 다들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해가 뜨면 하숙집 아주머니 눈은 퉁퉁 부은 채 상상 못 할 신 메뉴로 아침밥을 대충 차려놓았다. 그날 밤에도 하숙집 안방에서는 고성이 오갔고 아침 식탁에는  아주머니의 눈보다 더 불어 터진 면에 건더기 하나 없는 짜장이 부어져 있었다.

"면을 불에 올려놓고 잠들었어. 조금 불었어도 맛있어. 정성껏 만든 거야. 학생들 남기지 말고 다 먹어."

밤새 마신 술기운에 숙취로 흔들리는 손을 떨면서 나는, 잘라지지도 않을 만큼 딱딱해진 짜장면을 하숙집 아주머니의 감시를 받으며 아침부터 끝까지 먹어야 했다. 마치 잃어버린 재산을 보상받으려는 듯 아주머니는 짜장 소스 한 방울까지 다 먹으라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댔고 나는 며칠 후 하숙집을 나와 자취를 시작했다.


 그렇다고 짜장면을 먹지 않고 살 수는 없었다. 짜장면은 이미 사회적 음식이었고 가끔 친구들 손에 끌려 중국음식점에 가면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나는 식곤증과는 분명히 다른, 마치 술에 취한 채 구름 위를 걷고 있는 것 같은 상태가 되어, 모든 것을 포기한 듯 강의실 책상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날도 나는 중국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강의실에서 졸고 있었다. 잠결에 들리는 교수님의 말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차이니스 레스토랑 신드롬”

중국 음식처럼 조미료가 많은 음식을  먹으면 어지럽고 무력감을 호소하는 증상이 특징인 증후군.  나와 짜장면과의 불화를 입증할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았다. 치료법은 모르지만 그래도 원인은 찾은 것 같았다.


난 심장 수술하는 의사가 되기로 했다. 전공의 1년 차가 되었고 매일매일 당직을 서고 수술에 들어가야 했다. 아침은 당연히 먹지 못하고 점심은 운이 아주 좋은 날 먹을 수 있었고 저녁은 대부분 늦은 시간에 먹게 되었다. 누군가 "무슨 음식을 좋아해?"라고 물으면 "눈앞의 음식"이라는 대답을 했다. 물론 저녁식사 조차도 눈앞에 음식이 없으면 못 먹거나 삼각 김밥에 라면을 먹기 일수였다. 그때 짜장면이 있었다. 하얀 면이 딱딱하게 굳은 채로 비비면 젓가락이 부러질듯한 경도를 자랑하는, 이미 화석화가 진행된 누군가가 시켜 놓고 응급 수술을 들어가 주인을 잃은 스티로폼 접시와 랩으로 쌓인 짜장면은 항상 의국 구석에 한두 개씩 남아 있었다. 그래서 먹기 시작했다. 굳이 비비지 않고(사실 비벼지지도 않았다), 굳은 면을 젓가락으로 4등분 하여 식어서 곱게 기름이 껴있는 짜장 소스에 찍어서 베어 먹었다. 맛있었다. 지겹도록 매일 먹는 컵 라면, 삼각김밥, 바바나 우유보다 훨씬 맛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항상 의국 구석에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흉부외과 전공의의 삶은 녹녹하지 않다. 밥을 먹을 시간이 없고 잠을 잘 시간이 없는 것처럼 짜장면을 먹었다고  무력감이나 졸음 등을 호소하거나 느낄 시간 조차 없었다. 차이니스 레스토랑 신드롬의 간단한 치료법은 응급수술이었다. 차가운 짜장면을 삼사분 안에 먹고 입을 휴지로 닦은 채 수술실에 들어가 밤새 응급수술을 몇 번 하고 나니까 차이니스 레스토랑 신드롬의 모든 증상들이 사라져 버렸다. 아니 느낄 틈 조차 없었다. 전공의 연차가 올라가고 여유가 생긴 후 따듯한 원형 그대로의 짜장면을 먹은 후 에도 곱빼기를 시켜먹은 후에도 딱딱한 쟁반자장을 먹은 후에도 그간 평생 느껴온 모든 증상은 사라져 버렸고 그저 나는 짜장면을 좋아하는 인간으로 변해 있었다.


 지금도 나는 가끔 병원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는다. "수술 늦어지면서 다 불어버리면 어쩌려고요?" 항상 누군가는 물어본다. 하지만 난 수술이 늦어지고 딱딱하게 굳어 버린 짜장면을 먹으을 때면 항상 그 시절을 생각하며 짜장면을 맛있게 베어 먹는다. 전공의 1년 차, 무엇을 해도 잘 못하고 무엇을 해도 즐거웠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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