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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Jul 31. 2024

우리 적당히 할까요?

선을 넘지 않는 삶

'적당히'라는 어휘를 좋아한다. '적당히'유의어로 대충, 대강이라는 낱말이 있어 경우에 따라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적당히의 사전적 의미는 '정도에 알맞게', '엇비슷하게 요령이 있게'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선을 넘지 않는'의 의미로 해석하고 사용하고 있다.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사건이 있다. 용인의 한 초등학교 3학년 학생(A라 칭함)이 같은 반 학생(B라 칭함)을 자신이 다니는 학원 건물의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옷을 벗기고 알몸인 상태로 상가 주변을 배회하게 만든 일이었다. 지적 장애가 있는 B는 A가 맛있는 거 먹자는 소리에 따라나섰다가 말로는 다 하지 못할 배신감, 수치심, 참담함을 느꼈으리라. B 부모의 심정 또한 감히 짐작하기도 어렵다.  기이한 일을 벌이기까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JTBC 사건 반장에서 보도된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A는 분명히 선을 넘었고 사과조차 없다는 A의 부모 역시 지탄받아 마땅하다.(무슨 연유인지, 모두가 쉬쉬하고 있는 건지 관련 기사를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적당히'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 모두가 적당한 선에서 멈출 수 있다면 굉장히 평화로운 삶이 펼쳐질 거라 믿는다. 요리를 하다 간을 많이 하게 되면 그 요리는 버려질 가능성이 높고, 컵에 물을 가득 따르면 쏟을 확률이 높아지며, 세제를 기준보다 많이 쓰면 더 오랜 시간 헹궈야 한다. 말이 많아지면 말실수를 할 수 있고, 건강을 위해 시작한 운동은 과욕에 의해 건강을 해치기도 하며, 유쾌한 장난도 선을 넘으면 불쾌함으로 번질 수 있다. 이 모든 상황에서 '적당히' 행동한다면 문제의 결과와 마주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


물놀이가 목적인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 아이들은 크록스, 나는 편안한 슬리퍼를 신은 터라 양말을 챙기지 않았는데 여행 중 붕 떠버린 시간이 있어 검색 후 실내 놀이터에 오게 되었다. 아이들도 보호자도 양말을 신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곳이라 아이들은 남편이 챙겨 온 페이크삭스를 신고 입장했고 나는 유리창 너머 아이들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입구를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보니 다른 가족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행객이 대부분인 곳이라 차에 가서 양말을 챙겨 오는가 하면 근처 편의점에서 양말을 구입해 신고 입장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누군가 선을 넘어 불만을 토로했다면 아이들의 신나는 웃음소리는 고성에 묻혔을지도 모른다.


내 가족에게 지킬 건 지켜야 한다고 늘 주장한다. 공공장소에서는 공공예절을 지키고 회사에서는 사규를 따라야 하며 운전을 할 때에는 교통 법규를 어기면 안 된다. 눈으로 다 확인하기에는 어려운 선을 지키는 것이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 특히 사람을 대할 때 적당히 선을 지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기를 바란다. 나 역시 '적당히'를 잘 유지해 내 아이한테 부끄럽지 않은 엄마, 평화로운 삶에 일조하는 사람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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