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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 Feb 06. 2021

이직한 회사가 싹수가 노랗다면

멈춰야 할 때와 나아가야 할 때를 구분하는 기준

최근에 이직을 한 후배가 있다.

다니던 직장에서 미래를 보기 힘들어 어렵게 이직 결심을 하고 칠전팔기 끝에 이직에 성공한 후배에게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회사가 너무 힘들고 일이 많아서 입사한 날부터 계속 야근만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어렵게 이직한 회사지만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해왔다.


처음 이렇게만 이야기 들었을 때 나는 한 편으로는, 아무리 90년대생이 어쩌고 저쩌고 한다고 해도 너무 끈기가 없는 게 아닐까, 너무 예뻐 보이고 쉬워 보이는 것만 하고 싶어서 어려운 일 앞에서 쉬이 움츠리는 것 아닐까라는 꼰대스러운 생각을 했다.

그래서 조언도 꼰대같이 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게 너는 부럽다고 하지만, 내가 너 나이였을 때에는 지금 너보다 더 하찮은 곳에서 하찮은 일을 하면서도 그 시간들을 견디며 내 경력을 쌓는 데에 집중했었어.” (참 꼰대스러운 말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이 후배가 울면서 털어놓은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그 회사는 겉보기와 다르게 안이 곪아 있었고, 상사는 디렉션을 주지 못하는 무책임한 상사였으며, 동료 간의 분위기도 좋지 않아서 부정적인 에너지만이 감도는 곳이었다.

매일 새벽까지 야근을 해도 다 쳐내지 못하는 일들에 쌓여서 몸무게가 부쩍 많이 줄었고,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물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이건 단순히 ‘견뎌야 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임이 느껴졌다.


결국 나는 후배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시간을 좀 갖고 다시 취직 준비할 것을 권했다.

나의 기준은 그렇다.

고통도 질이 좋은 고통과 질 나쁜 고통이 있다.

질 좋은 고통은 나를 만들어주고 다듬어 준다. 고된 환경 속에서 배우는 것들은 빠르게 그리고 깊이 새겨져서 나를 더 나은 모습으로 조각해준다.

질 나쁜 고통은 나를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나를 녹여버린다. 나를 잠식시켜 버리는 고통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이때 그 고통의 질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뿐이다.

제3자가 보는 눈으로 판단하는 것은 내 기준에 맞춰져있지 않기 때문에 그저 비난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내 한계는 내가 제일 잘 알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다음에서야 우리는 그 고통이 어떤 고통인지 판단할 수 있다.



언젠가 TVN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 온더블록>에 출연하신 한 할머니가 한 말씀이 있다.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가 나 자신한테 속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속지 말고 묵묵히 하던 것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할머니께서 이 말씀을 같은 상황을 두고 하신 말씀은 아니지만, 우리가 살면서 어려울 때 떠올려볼 만한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시작도 쉽지만 참 포기도 쉬워진 세상에서 무엇 하나 끈기 있게 밀고 나가는 것은 큰 용기이다.

그렇게 다짐하고 새로운 시작을 했지만, 맞닥트린 현실이 ‘질 나쁜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다면 그때는 나 자신과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내가 견딜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인지, 섣부르지 않았는지, 내 행동에 내가 책임질 수 있을지.


나 자신과 객관적 판단 하에, 이직한 회사가 싹수가 노랗다고 생각이 든다면 하루빨리 털고 나와서 새로운 곳으로 이직 준비하는 것이 낫다.

괜히 그 싹수 노란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이직 준비를 하게 되면, 일하면서 이직 준비를 해야 하니 집중도 있게 준비하기 어려울뿐더러,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 나도 모르게 그 회사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적응한 환경에서 ‘에이, 뭐 이제 적응했는데 무슨 이직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러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더 지체하지 말고 나오는 것도 방법이다.

두려워하지 말자.

다시 취직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을 그 불안감을 갖지 않기 위해서 현실과 손을 잡으면, 그것이 바로 타협이다.


나 자신이 먼저 바로 세워지고 직장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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