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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름 Mar 01. 2024

[혼자 하는 것들이 늘어나는 삶] ep1.혼술




어렸을 적, 미래의 나를 그려보곤 했다. 인서울 대학에 가서 교환학생도 하고 졸업하자마자 누구나 아는 회사에 취직해 커리어우먼이 되어 있는 나의 미래를 말이다. ‘프라다는 악마를 입는다’라는 영화를 보며 바쁜 일상을 보내지만 일과 사랑 모두 공존하는 그런 삶을 그렸던 것 같다.


 상상했던 나이가 된 지금의 나는 별거 없다. 회식을 굉장히 싫어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업무의 연장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얼굴보다 오래 보는 직장 동료들의 얼굴을 퇴근하고도 마주하고, 공동의 주제가 ‘일’인지라 다시 업무 얘기하고 있는 ‘공간만 바뀐 업무시간’을 싫어한다.


 이런 나의 소소한 즐거움은 퇴근 후 안주를 뭐 먹을지 고민하며 마트나 편의점에 들러 술을 사는 것이다. 봉지 속에서 짤랑거리는 소리가 BGM이 되어 발걸음을 흥겹게 만든다. 집에 오자마자 사 온 술들을 냉동고에 넣은 후,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상태가 해방을 알린다. 반주상을 차려놓고 친구가 되어줄 영상을 틀고 나면 나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혼술을 하면 어떤 주종을 마실건지 눈치 보며 “다 괜찮아요.”라고 말할 필요도, 짠 할 타이밍을 눈치 볼 일도, 잔을 채우느라 여기저기 술병을 들이밀 필요도, 잠시 딴생각을 하다 못 들은 내용도 알아들은 척 머쓱한 웃음을 지어내지도, 분위기가 다운되지 않도록 괜한 소리를 하거나 오버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건 내가 좋아하는 템포에 맞춰하면 된다. 때론 술을 삼키며 쓴 기억을 함께 넘기기도 하고, ‘키야’라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올 땐 ’나 술꾼 다됐네.‘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나의 하루를 마무리한다.



 휴일이거나 여행중일 땐, 썩 괜찮아 보이는 곳에 들어가 맥주 한 잔을 시켜 밖의 사람들을 구경하곤 한다. 마치 거리가 TV가 된 것 마냥 말이다. 날이 좋으면 테라스나 창가에 앉아 그날의 바람, 습도, 그리고 소음까지 느껴본다. 얼마 안 하는 나의 힐링 중 하나다. 외출 혼술은 이게 끝이 아니다. 나를 위한 사치를 하고 싶을 땐 혼자 외식하며 즐기는 소주 한 잔이 어쩜 그리 포근한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네인 성내동에 살 적엔 텐트와 책, 그리고 술을 챙겨가 책을 읽으며 술을 홀짝이다 낮잠을 자고 오곤 했다. 나만한 낭만혼술러가 어디 있겠냐는 환상에 젖어서 말이다.


 COVID-19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중 내가 편한 것 중 하나는 온라인 술자리다! 각자 좋아하는 술과 안주를 준비하고 각자 자신만의 공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게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집에 갈 걱정도, 막차시간 걱정도 하지 않을 수 있다. 안주도 주종도 모두 각자 좋아하는 것으로 준비할 수 있어 눈치 볼 필요 없는 술자리다. 정말 좋다!


 이젠 혼자 하는 것들이 종류도 방법도 다양화되고 있단 생각을 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상상했던 30대의 나의 모습은 아니지만 이 또한 얼마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행할 줄 아는 커리어우먼인가.


 나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해 주며 하루를 털어 넘겨 본다. 이렇게 혼자 하는 것들이 늘어나는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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