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또 그랬다. 내가 좋아하는 그 작가의 글이 다른 언어로 표현될까 싶은 걱정은 깊어지기도 전에 그쳤다. 나는 그 걱정보다 좋아하는 그 글을 읽고 또 게워낼 나의 속을 걱정했다. 너무나도 기대되는 글이지만, 읽기 전 나는 마음의 한구석을 단단히 조심시켜야만 했다.
꼭꼭 씹어 먹었다. 체하지 않도록 주어진 글들을 그 어느 순간 보다 정성껏 씹어먹어 보았다. 그래도 이내 의지와 다르게 게워내는 나의 속을 보며 느꼈다. 나는 그 무엇보다 날것이라고.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칼로 찌르는 부분을 반복해 읽었다. 어쩌다 이러면 내가 죽을까 싶을 정도로 괴로워도 눈에 담고 또 담았다. 이런 감정을 처음 느낀건 2019년 임진강에서 새해 첫 해를 보기 위해 간 2018년 끝자락이었다. 파주에서 읽었던 꽤나 공격적인 책을 와인과 함께 계속해서 삼켰다.
한국어가 원어여서 감사한 글이었지만, 차마 이 느낌을 한국어로 표현할 방도가 없어 막막하기도 했던 그 글은 이제 세계로 뻗어나갔다. 전 세계 서점에선 그녀의 책을 구하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채식주의자, 그 책을 읽고 충격받았던 나는 틈틈이 교보문고에 가 그녀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기억의 공간이 넉넉지 않아 그녀의 시를 담아두었고, 세상이 퍽 메마르게 느껴질 때마다 사탕처럼 한 문장씩 꺼내먹었다. 그녀의 글은 나의 사탕이 되기도, 초콜릿이 되기도, 그렇게 혼자인 내 곁에 남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