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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nd Turtle Jun 19. 2022

파리 한 마리, 개미 한 마리

명상 기록 21일째

명상을 시작한 지가  달이  되어 가는데 아직 이렇다  변화를 경험하지 못해 약간은 답답한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집중해서 명상을 해볼 요량으로 인근 사찰로 갔다. 다행히 법당이  비어 있어 명상하기에  좋았다. 나는 불교도는 아니지만 절집에 왔으니 절집의 예법에 따라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자리에 앉았다.




방석에 앉아 코끝의 숨에 마음을 모으려고 애쓰는데 파리  마리가 목덜미에 내려앉았다. ‘잠시 머물다가 가겠지라고 생각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파리는 날아가기는커녕 목덜미를 따라 오른쪽으로 갔다가 왼쪽으로 갔다가 앞쪽으로 방향을 틀어 목덜미를 타고 내려와서 잠시 머물다가 다시 뒤쪽으로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간지러움이 온몸으로 퍼졌지만, 이미 명상 자세를 잡은지라, 몸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또한 내가 아는 파리의 속성상 쫓아내 봤자 다시 돌아와 나를 괴롭힐 것이 분명하기에, 그냥 참아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에는 많이 간지러웠지만 조금 지나니 견딜만했고, 조금  지나니, ‘ 녀석 덕분에 온전히 깨어서 명상을 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웃기기는 하지만, 그래도  ‘ 파리가 진정한 행복과 안락을 누리기를이라고 축원을 해주었다. 10여분  지나 파리는 날아갔고 잠시  나의 손등에 앉아 잠시 머물다가 날아가고는 이후 2시간의 명상 시간 내내  번도 나에게 오지 않았다.


파리도 날아가고 본격적으로 명상을 시작하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쉽게 사라지는 생각도 있고 그렇지 않은 생각도 있었다. 명상하기 전에 뵙고 왔던 병져 누워 계신 어머니와, 어제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하루아침에 소녀가장이 되어버린 우리 반 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코끝의 숨에 마음을 모으자 이내 사라졌다. 그 밖에 많은 생각들이 일어났지만 숨에 마음을 모으니 쉽게 사리지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쉽게 사라지지 않고 집중력이 떨어지면 의식 속으로 계속해서 들어오는 생각들도 있었다.


내가 법당에서 명상하는 동안 몇몇 분들이 와서 불공을 드리고 나갔다. 아이와 함께 온 젊은 부부도 있는 것 같았고, 혼자 와서 잠시 불공을 드리고 가신 분도 계셨다. 모두들 한쪽 구석에서 눈을 감고 명상하는 나를 의식해서 말소리를 죽이고 발걸음을 조심해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하셨다. ‘이 분들이 진정한 행복과 안락을 누리기를’이라고 축원을 드리고 나의 명상을 이어 나갔다. 오늘은 참배객들은 있었지만 코끝의 숨에 집중하는 것을 크게 방해하지는 않았다.


돋보기로 종이를 뚫기 위해서는 빛을 한곳에 집중적으로 모아야 하는 것처럼, 명상도 하나의 경계를 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마음의 집중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마음 돋보기를 그렇게 오랫동안 한 곳에 고정시키지는 못한다. 오늘은 숨에 대한 집중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크게 힘들지도 않았고 다리가 저리거나 허리가 아프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편안하였다. 편안한 상태가 지속되면 보통은 혼침이 찾아오는데, 오늘은 파리 덕분인지 잠이 찾아 오지는 앉았다. 이렇게 첫 50분의 명상이 끝났고, 50분 더 앉아야겠다는 정진의 마음이 생겼다.




다음 50분의 명상을 하는 동안에는, 내가 온전히 숨 안으로 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눈을 감으면 느껴졌던 변화무쌍한 시각적인 잔상들, 사이키델릭 한 시각적 잔상들이 이제는  많이 차분해지고 숨을 따라 움직여, 코끝의 호흡에 마음을 모으는데 크게 방해가 되지 않았다. 숨을 쉴 때마다 변화하는 복부의 움직임도 숨 안으로 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이 코끝의 호흡을 중심으로 일어났다가 사라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 생기는 다리의 저림도 호흡과 함께 일어났다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고 그 저림의 예너지로 몸의 구석구석을 채워주는 듯한 충만함을 가져다주었다. 기분 좋은 충만감이 불편함으로 바뀌기 시작할 즈음 50분의 끝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눈을 떠보니 개미 한 마리가 나의 팔 위를 기어 다니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이 녀석의 움직임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손바닥에 올렸다가 손등으로 보냈다가 하며 장난을 좀 치다가 바닥으로 내려주니, 개미는 제 갈길을 갔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서 부처님께 삼배를 드리고 절집을 나왔다. 머릿속이 안개가 걷힌 듯 맑아져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맑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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