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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nd Turtle Jun 27. 2022

뭐하는 놈이여!

명상 기록 23일째

가산스님께서 툇마루에  앉아  한가로이 먼산을 쳐다보고 계신다. 반가운 마음에 합장을 하고 얼른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스님께서 다정한 미소로 따뜻하게 맞이해 주신다.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이라, 참배객들도 다 돌아가고 먼산 구름을 쳐다보며 망중한을 즐기는 중이셨다고 한다. 스님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나의 수행 이력에 관해 조금 말씀드렸다. 오래전에 해인사 원당암에서 두 차례 용맹정진에 참가한 일에 대해 말씀을 드리니, 7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참선을 하는 그 용맹정진이 맞느냐고 확인차 물으신다. 그렇다고 하니, ‘처사님은 공부를 오랫동안 하셨네요. 그런데 진척이 없었군요.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지 못해서 그래요.’라고 하신다.




그래서 현풍 비슬산 도성암에서 성찬 큰스님을 뵙고 크게 혼난 일에 대해 말씀드리니 가산 스님께서 박장대소하신다. 나도 덩달아 크게 웃었다. 사연은 이렇다. 30대 중반쯤에, 나는 참선 공부에 마음이 있어서, 금요일마다 퇴근하자마자 바로 비슬산 도성암으로 갔다. 당시에 도성암 주지셨던 성찬 큰스님께서는 금요일마다 재가 불자들이 와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선방을 개방해 주셨다. 스님들과 일반 불자들이 함께 참선을 하고 참선이 끝난 후에는 차담을 나눌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신 것이었다. 나는 참선에 몇 번 참여했지만 큰스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다. 큰스님이 몸이 불편하셔서 참선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다고 했다.


성찬 큰스님은, 도를 깨우친, 절집에서는 ‘ 소식했다 하는, 그야말로 큰스님이셨다. ‘도를 깨우친 스님은 도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말씀을 하실까?’라는 궁금증이 점점 커져 가던 , 어느 금요일 , 스님을 뵙고자 청하니, 스님이 허락을  주셨다. 공양주 보살님의 안내를 받아, 큰스님이 계신 방으로 들어가니, 초췌한 모습을  작은 체구의 노승  분이 침대 위에서  손으로 머리를  채로 옆으로 누워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셨다.  괴기스러운 모습을 하고 계셨다. 스타워즈에 나오는 ‘마스터 요다같은 모습이라고나 할까. 나는 내가 상상하고 있었던 빛나고 멋있고 온화한 큰스님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는데, 스님께서 난데없이, ‘뭐하는 처사()?’라고 물으셨다. 당연히 직업을 물으시는구나라고 생각하고 ‘00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나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  산이 떠나갈 듯이 크게, ‘나가!’라고 호통을 치셨다. ‘네에?’라고 놀라서 말하니, 옆에 계시던 공양주 보살님께서, ‘오늘은 그만하시고 다음에 오시지요.’하며 나의 팔을 이끌고 나가셨다. 아마 이런 대접을 받은 바보들이 나만 있었던  아닌 모양으로, 공양주 보살님은 이럴 경우 어떻게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가산스님께서는 “그래, 처사님, 이제는 처사님이 뭐하는 놈인지 알아내셨습니까? 아니 이건 알 수가 없지. 그래서 계속 수행하는 거지. 라며 깔깔 웃으신다. 나도 덩달아 껄껄껄 웃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누고 난 뒤, 가산 스님께서는 큰절로 저녁 공양(식사)을 하러 가셨고 나는 법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펴고 앉았다.




오늘은 명상을 하는 내내, ‘지금 다시 그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 것인가?’ ‘뭐 하는 놈이여?’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가!’라는 불호령을 피할 수 있는 답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법당에 앉아 있다가 나오니, ‘이제 마치고 가세요?’라는 말하는 가산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스님께서 이제는 다른 방향의 먼 산과 하늘을 보시며 앉아 계셨다. 또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서 옆에 앉았다. ‘여기 앉아서 저기 산과 나무와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너무 좋아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억만금을 줘도 바꾸고 싶지 않아요.’라고 하신다. 마침 강한 바람이 불어 주위의 나무들이 흔들리고 소나기가 오는듯한 소리가 들리니, 가산스님은, 어린아이처럼 의자에 등을 기댄 채로 두 팔과 두 다리를 흔들며, ‘아, 너무 좋아. 나는 이때가 너무 좋아. 꼭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 것 같잖아.’라고 하신다. 어린아이의 순진함을 그대로 나에게 보여주신다. 스님과 같이 있으면 나도 덩달아 유쾌해진다. 아직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산스님은 한참 동안, 나를 위해 법문을 해주셨다. 본인의 출가 이야기, 내가 공부가 진척이 없는 이유, 그리고 읽어야 할 책 두 권을 소개해 주셨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명상을 하지 말고 ‘화두 참선’을 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화두 참선은 화두를 들고 열심히 의심하는 수행법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성찬 큰스님은 나에게, ‘뭐하는 놈이여.’라는 화두를 던져 주셨는데, 만약 그때, 내가 물고기가 낚시 바늘에 꿰이듯 그 화두에 집중하여 진지하게 참구하고 수행했다면, 많은 진척이 있었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맞는 말씀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것은 내가 안 해 본 수행이 아니어서 스님의 의견으로 참고만 하기로 했다. 언젠가 가산스님께 내가 하고 있는 사마타 수행법에 관해 좀 더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명상법 즉, 아나파나사티anapanasati라고 하는 들숨날숨에 마음 챙기는 명상이 나의 근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명상을 통해 들숨과 날숨에 대한 집중력이 커지고 그로 인해 니미따라고 하는 빛이 뜨면 그 빛의 인도를 따라 초선정, 이선정, 삼선정, 사선정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아직 들숨과 날숨에 대한 집중도 제대로 유지가 되지 않고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것이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노력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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