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았다
어떤 책을 읽고 있는데 글을 쓰는 사람은 어슴푸레한 기억을 놓치지 말고 집중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내용을 보았다.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구구절절 계산해 보면 국민학교 1학년때부터 24살 때까지 꼬박꼬박 썼던 난해하고도 유치뽕짝인 성장과정의 일기들, 성인이 되어 화가 나고 우울할 때 끄적거렸던 자멸의 데스노트 같은 시들, 여전히 쓰고 있는 일상 단편적인 내용의 일기까지 하면 어연 30년째 글을 쓰고 있긴 하다.
나는.
단어와 단어 사이를 연결하는 문장 구사력이라고 해야 하나. 매끄럽고 어려운 단어를 참 자연스럽게 잘 붙여 쓰는, 그런 식으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고 누가 끄적대고 살지 좀 말라고 다그쳐도 기필코 피는 곰팡이처럼 어디든 글을 고집스럽게 피워내고 배설해서 쓰고야 마는 식의 잘 쓰는 능력은 있다.
종이로 된 일기장에 글을 적을 때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 생활하다가 생각난 일, 사람에 대한 이야기, 걱정거리, 앞으로의 계획 등을 종이에 가감 없이 털어놓듯 적는다. 정말로 나밖에 안 보기 때문에 또 악필이라 나밖에 못 알아보기 때문에 문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든 말든 맞춤법이 틀렸든 말든 상관없는데, 이런 작업을 혼자 꼼지락거리고 하다 보면 정말로 오늘 읽은 책 내용처럼 잊고 있던(혹은 잊은 척했던) 어슴푸레한 지난 기억이 아는 냄샌데 무슨 냄새인지 기억이 안 나서 답답한 느낌처럼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기억 중에 특히 충격적인 기억은 아무리 어릴 때의 일이라도 잊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잊은 척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어슴푸레가 아니더라도 언제든 꺼내서 떠올릴 수가 있는데 나는 요즘처럼 무더위가 시작되는 계절이면 잊은 척하는 기억이 매해 떠오른다.
단어가 좀 불편하긴 하지만 지금은 얼굴도 안 보고 사는 사촌의 성추행이라고 하면 좀 그럴까. 아주 어릴적이지만 너무나 생생한 기억이고 이 기억을 어떻게 표현하고 인정해야 하나 성인이 되어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고민하다가 최근에야 비로소 성추행이라는 단어가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명한 소설가들이 쓰는 글들은 어쩌면 직접 겪거나 간접 경험한 글을 이야기로 꾸미고, 전하고 싶은 속 마음. 그러니까 메시지를 이야기에 넣어서 독자들이 다 읽고 나면 이야기를 되새김질하면서 메시지를 곱씹어 소화시키게 만드는 것 같다.
언젠가는 기억에서 지우거나 기억이 나더라도 치욕스러운 기분이 덜 드는 저런 기억들을 지금보다 더 성숙한 글로 돌려 돌려 이야기로 잘 표현해서 사람들에게 읽음 당하고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쓰고 나니 아주아주 조금은 별 일이 아니었다고 느껴진다. 글을 쓰는 것은 위로이다.
어쨌든 결국 비밀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