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릇될 때까지 버릇된 게 아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화장실 작은 창문에 거미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거미줄에 날벌레와 같은 작은 곤충들이 잡혀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이 진정한 친환경적인 방충망이구나!' 감탄했다.
또 어느 날에는 날벌레들이 사라지고 없는 것을 보고
'거미가 잡아먹었구나 이것이 친환경적 곤충채집이구나!' 감탄했다.
강아지가 혼자 점프를 뛰면서 놀고 있길래 봤더니 집에 들어온 러브버그였다.
'이것이 진정한 친환경적인 강아지 놀잇감이구나!' 귀여움에 감탄했다.
5월 경에는 집 문부터 건물 대문까지 가는 길 화단에 죽은 비둘기가 있어서 공포스러운 마음에 임대인 사장님께 도움을 요청했더니 금세 나타나셔서 땅을 파고 비둘기를 묻어 주셨는데, 6월부터 그 화단에서 애호박이며 토마토며 마구 자라나기 시작했다. 자라날 때가 되어서 자라난 것이겠지만
'비둘기가 땅으로 돌아가서 친환경적인 거름이 되었구나!' 하면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공포심에 감탄했다.
감탄할 일은 감탄하다 보면 감탄할 일이 자꾸 생긴다.
어떤 주제를 갖다 주어도 귀찮은 마음이 가득했던 지난날에는 어떠한 장면에도 감정을 갖는 것이 귀찮았는데 그때는 눈에 보이는 것을 감정으로 전달하는 통로가 닫혀있던 것이었을까 생각한다.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손이 귀찮을 수는 있지만, 만일 특정 감정을 갖는 것에 귀찮다고 느껴지면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인지하고 괜찮은지 물어봐야 한다. 나 자신에게.
그렇게 창문을 봉쇄했는데도 러브버그가 또 놀러 왔다.
'대단한 녀석이다!' (감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