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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위로

뉴질랜드에서 15주 차 아기를 유산하고, 위로가 필요하던 나에게 찾아온

by 장혜영
2025 다정한 시선_어느 날의 위로.png 일러스트 guka


우리는 서로를 불쌍히 여겼다. 임신안정기라 불리는 16주 차를 한 주 앞둔 15주 차에 아기를 유산하고 다행히도 우리는 서로를 원망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자책하는 물음들이 머릿속을 맴돌지만, 가장 먼저 괜찮냐고 서로에게 물었다. 남편은 자연분만의 통증을 다 겪고 사산아를 낳은 나를, 출혈이 많아서 바르르 몸을 떨고 있는 나를 염려했다. 나는 오히려 로이를 돌봐야 해서 혼자 있을 시간이 없는, 울 시간을 갖지 못한 남편이 안쓰러웠다. 자는 동안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걸 보며 울고 있는 건 아닐까 짐작할 뿐이었다. 아기의 태명은 ‘귤’이었다. 입덧이 심해서 귤을 많이 찾았고, 로이의 태명이 ‘포도’였기에 따라서 과일 이름으로 지었다. 6주 차부터 시작된 입덧으로 물도 마시기 어려웠고, 11주 차부터 하혈이 보여서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지냈다. 집안일은 모두 남편의 몫이었고, 고된 일을 마치고 돌아와 장을 보고 요리를 하며 그는 점점 야위어 갔다. 그럼에도 아기에 대한 기대와 기쁨이 더 컸고, 내가 아픈 것보다 아기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마음 졸였던 나날이었다.


유산 전문 미드와이프가 병실을 찾아와 “너의 아기를 보고 왔어. 참 예뻤어. 너도 아기를 보고 싶니?”라고 물어왔다. “내 아기(My baby)...”라고 응답하는 순간 눈물이 흘렀다. 너무 생각이 날 거 같아서 몇 번을 거절하다가 아기를 한번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보겠다고 답했다. 귤이는 예쁜 바구니 안에 옷과 모자를 쓴 채 누워있었다. 조그마한 손이지만 손가락도 5개, 손 모양도 나를 닮아있었다. 작은 얼굴 안에 눈, 코, 입이 오밀조밀했고 약간 입꼬리가 올라가 있어서 미소 짓고 있는 듯이 보였다. 다행이었다. 여자 아이였다는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품에 안겼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천국에 가면 귤이를 만날 수 있을까요.’라고 기도했다. 미드와이프는 조심스럽게 아기를 병원에서 화장을 해서 공동묘지에 뿌려줄지, 공동묘지에 묻어줄지, 혹은 집으로 옮겨서 프라이빗하게 묻고 싶은지 물어봤다. 아기의 손자국, 발자국을 찍어서 기념물을 만들어줄 수도 있다고 했다. 이 모든 비용은 무료라고. 아직 이름을 갖지 못한 아기도 존중해 주는 문화가 고마웠다.


아기는 화장 후 공동묘지에 뿌려달라고 말했다. 그날 새벽에는 잠을 자기가 어려웠다. 간호사가 15분마다 들어와 혈압과 심장박동을 재었고, 3-4시간마다 피검사를 했는데 할 때마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너무 낮다며 정상 기준치의 절반이라고 말했다. 태반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며 1리터의 피를 손실했고 스스로 회복이 되지 않아 결국 수혈을 받았다. 밤새 너무 추워서 몸을 떨었는데, 6겹의 이불을 무거우리만큼 덮었는데도 추웠다. 문득 울고 있던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와이카토 병원에서 첫째 로이를 낳고 복도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본 울고 있던 사람. 소리 없는 울음과 맥없는 얼굴, 창백한 얼굴색에서 유산을 한 것이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보호자도 없이 혼자 있어서 더 안쓰러워 보였다. 새벽부터 우리를 따라 병원에 왔던 로이가 갑자기 눈병이 생겨서 남편은 로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야 했고, 나 역시 그 여인처럼 혼자가 되었다. 그 사람도 보살펴야 할 아이들이 있어서 남편이 함께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하고 갑자기 그 여인이 이해가 되었다. 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과 내가 닮은 얼굴이 되기도 하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을 헤아리게 되는 게 인생인가 보다.

20250706_123639.jpg 메모리얼 가든 안에는 아이들의 무덤만 모여있는 구역이 있었다.
20250706_123751.jpg 어찌 보면 가장 슬픈 무덤이 아닐까. 영원히 너를 기억할 거라고, 사랑한다고 적힌 작은 무덤들을 보며 우리와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퇴원을 하고, 귤이를 화장하고 재를 뿌린 마누카우 메모리얼 가든(Manukau Cemetery)에 찾아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 넓은 가든 안에는 묘지들이 많았는데 한쪽에 아이들의 무덤만 모여진 구역이 있었다. 귤이처럼 태어나기 전에 하늘나라에 간 아기부터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품을 떠난 아기, 한창 귀여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이들까지 너무도 작고 예쁜 무덤들을 보며 슬퍼졌다. 이 아이들의 가족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그들은 묘비에 영원히 너를 기억할 거라고, 사랑한다고 적고 있었다. 곰돌이, 미키마우스, 토마스 기차 등 아이가 좋아했던 캐릭터로 묘비를 만들고, 그 옆에 아이가 좋아했던 장난감을 두거나 꽃을 둔 자리들을 보며 몰랐지만 우리와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세상에 참 많구나 느꼈다. 그들은 그 아픔을 어떻게 묻고 살아가고 있을까. 시간이 지나 그 상처들은 좀 나아졌을까. 적어도 아프다고 혹은 아팠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며 돌보고 있을까.


나는 이미 죽음의 아픔을 알고 있는데 왜 또 이런 시련이 왔을까 생각했다. 내가 8살 되던 해 암투병 끝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30년 전의 나는 마음속에 엄마를 묻었다. 도저히 그 아픔을 감당할 수 없어서 꽁꽁 싸매어 깊은 곳에 묻었고 나 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도록 방치했다. 스무 살이 될 무렵부터 조금씩 그 상처를 돌아보게 되었고 지금에 와 8살의 아이 혹은 10대 시절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면 도움을 청하라고, 도움을 요청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두 번째 죽음의 이별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고 애도하며 아픔을 꺼내놓는 걸 보며,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 느꼈다. 말을 할 때마다 눈물이 나기 때문에, 일일이 사람들에게 나의 상황을 말하지는 못했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 알리고 또 대신 전해주기를 부탁하며 위로를 받았다. 친구 줄리는 안아주고 싶다고 문자 했고, 스티브는 3시간 떨어진 타우랑가에서 찾아와 꽃과 편지를 전해줬다. 그리고 교회 사람들은 미역국, 불고기, 닭죽 등을 만들어 일주일 동안 집 앞에 전해주고 갔다. 도로시 할머니는 말씀 구절들을 손수 적어 넣은 앨범을 만들어 소포로 보내주었고, 마가렛 할머니는 너를 생각하고 있다는 편지와 함께 로이를 위한 자동차 장난감까지 넣어 소포를 보내주었다. 로이의 선물도 빼놓지 않는 세심함에, 빨리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하루 만에 도착하는 빠른우편을 사서 보내는 할머니의 배려에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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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할머니의 소포, 로이를 위한 장난감까지 챙겨주는 배려에 감동을 받았다.(좌) 3시간 떨어진 거리에서 달려와 꽃과 편지를 두고간 스티브. 내가 참 사랑받고 있음을 느꼈다.(우)
20250722_도로시 할머니 소포.jpg 손수 말씀을 적어서 앨범에 넣은 후 소포를 보내준 도로시 할머니. 위로의 말을 전하기보다 생각하고 있다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는 배려가 고마웠다.


사람들은 위로하려 하기보다 생각하고 있다고 사랑한다고 계속 말하는 듯했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다시금 깨달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위로받아본 적 없던, 도움이 필요하다고 티를 내본 적도 없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간다. 아프다고 말할 수 있고 다른 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어른. 정현종 시인의 ‘비스듬히’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생명은 그래요. /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나무들이 멋진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오롯이 서있기보다 불안하게 기울기도 제멋대로 엉키기도 하면서 무성하게 자라난다. 나 역시 나무들처럼 어딘가 기운 사람이 되어간다. 혼자 견뎌낼 수 없고,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어른들은 사람 인(人) 자 모양으로 비스듬히 기대며 살아간다. 그렇게 둘이 되고 셋이 되고 넷 이상으로까지 되어가면서 자신을 넓혀 가는지도 모르겠다. 서로를 안쓰럽게 여기며 사는 것, 말하기보다 사랑한다고 행동하며 사는 것, 긴 밤이 지나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 나는 지난 시간의 아픔보다 이 시간을 통해 배운 것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고통이 그러하듯 회복 역시 소리도 없이 찾아왔다고 반기고 싶다.




<다정한 시선>은 매달 마지막주 월요일에 배달되는 뉴스레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정한 시선>은 7년 차 뉴질랜드 시골 살이 중인 작가가 겪은 시선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어디서 왔냐?”는 말을 평생 들으며 다수의 입장이 아닌 소수의 인종이 되는 아픈 경험이지만, 한편으론 이전엔 보지 못했던 풍경과 예상치 못했던 상황들을 접하며 시선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뉴질랜드 타지인이기에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지난 화 보기가 가능합니다.

https://newzealand.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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