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나 아빠가 되기 전 ‘부모 자격증’이 필요할 만큼 부모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반성하는 횟수가 차곡차곡 쌓여간다. 어쩌면 부모는 진짜 ‘부모 자격증’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만큼 부모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순간순간 알아차려야 한다.
피부나 관절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루푸스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랬다면 딸이 위급한 상황을 여러 번 경험하지 않았을 텐데. 병이 터질 것처럼 커지는 동안 도대체 엄마라는 사람은 뭘 한 건지.
딸이 왜 초록색 담즙(쓸개즙)을 토하며 지독한 복통이 계속되는지 원인을 찾기 위해 여러 병원을 찾았다. 잦은 입원과 검사로 딸은 점점 지쳐갔고, 혈관도 약한데 피검사는 하루도 거르는 일이 없다. 혈관을 찾기 위해 수없이 찌르고 빼고를 반복하다 보니 양쪽 팔은 이미 멍 자국이 가득하다. 지켜보는 사람도 고통스러운데 딸은 얼마나 괴로울까. 수액을 매일 맞다 보니 약한 혈관이 자주 터지곤 했다. 하루하루가 똥줄이 타들어 가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다.
수액을 맞는 과정에서 혈관에 떡! 허니 안착해야 할 바늘이 혈관을 뚫고 피부 안으로 약물이 들어가 팔은 우람한 헐크가 되곤 했다. 바늘 꽂은 부분에서 수액이 역류해서 환자복이 젖는 일도 빈번했다. 이런 일이 병원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인지 아니면 딸만 유난히 자주 겪은 것인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대학병원에서는 한 달간 입원했는데, 소장 부위가 부어오른 상태지만 원인을 찾지 못한다. 진전이 없는 입원을 계속 이어갈 수 없어 신중한 고민 끝에 퇴원을 요구했다. 집에 돌아온 딸은 약 20일 만에 몸무게가 10kg이나 빠졌다. 심한 고통과 함께 담즙을 토해내는 횟수가 반복되면서 끝내 밥 한 숟가락조차 삼킬 수 없게 되었다. 축 늘어진 채 누워있는 딸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돼 버리고 말았다.
“엄마 저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데려가 주세요”
딸은 없는 힘을 쥐어 짜내며 가까스로 말을 한다. 딸이 요구하기 전에 이미 큰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엄마인 나는 뭘 하고 있었던 건지 참으로 융통성 없고 답답한 보호자다. ‘이런 내가 엄마 자격 있는 거 맞아?’ 엄마로서 부끄러운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서둘러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을 찾았다. 2012년 12월 딸이 병원에 입원했고, 그동안 타 병원 검사기록이 도움 되었는지 일주일 만에 루푸스 진단을 받았다. 2~3개월 사이 소장은 터질 것처럼 빵빵하게 더 부어 있었다.
2012년 여름 엑스레이와 초음파 검사에서 확인했던 정체불명 가스(?)는 바로 염증이었다. 영영 숨어버리지 않고 이렇게라도 모습을 드러내 준 고마운 루푸스. 그날 밤 나는 병원 간이침대에 앉아 멈추지 않는 눈물을 연신 닦아야 했고, 딸은 자신의 병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오히려 엄마인 나를 위로하면서.
딸은 생명을 위협하는 장기(소장염증)에 이미 손상을 입은 상태에서 루푸스 진단을 받았다.
담즙은 하루 약 250~1000cc 정도 간에서 만들어지고 십이지장으로 배출되는 소화액이다.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은 담낭에 저장되어 있다가 음식물 속에 있는 지방을 녹여 지방 소화를 돕는 중요한 소화액이다. 소장은 소장운동을 하면서 영양분을 소화하고 흡수하는 중요한 곳이다. 딸이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쓸개즙)을 소장으로 보내지 못한 이유가 소장을 가득 덮고 있던 염증 때문이었다.
아픈 과거를 꺼낸다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까.ㅠㅠ 브런치에 올라오는 자신의 아픈 사연을 쓰고 계시는 작가님들을 존경하게 된다. 에효. 용기 내어 쓰고 있으니 부족해 보여도 이해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