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부터 이전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던 A 선생님과 같은 학교에 근무하게 됐다. A 선생님에게 지금 근무하는 학교 학생들이 너무 착하고 순해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말을 했었는데, 내 말을 기억하고 우리 학교로 전보를 신청했던 것이다. 정기 전보 결과가 발표되던 날, 컴퓨터 화면에 뜬 A 선생님의 이름을 보며 이전 학교에서 학생들 때문에 힘들어하던 A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착하고 순한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웃으며 근무하는 게 바람이라고 늘 이야기하던 A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공립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매해 바뀐다. 어떤 해는 괜찮았다가, 어떤 해는 그렇지 않다. 아이들과 생활하는 선생님들에게 해마다 달라지는 아이들의 기본적인 성향을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다행히도 A 선생님이 맡은 학년은 상당히 괜찮은 학년에 속했다. 많은 선생님이 그 학년을 좋아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태도도 바르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A 선생님이 맡은 반이 문제였다. 유독 학교에 나오기를 싫어하고, 선생님께 대드는, 이른바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이 몇 있었다.
학기 초부터 A 선생님은 그 아이들 때문에 힘겨워했다. 연락도 없이 학교를 안 나오거나, 조퇴를 밥 먹듯이 했고, 수업 시간 중 무단 외출도 잦았다. 그런 문제 행동으로 다른 교과 선생님들과 문제가 생기면 항상 담임에게 책임의 화살이 돌아왔다. 그리고 지도해야만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날 선 언어를 내뱉으며 A 선생님의 지도를 거부했다. 부모님의 태도도 문제였다. 가정에서의 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듯했다. 어느 날 A 선생님을 찾아가 얘기를 나누다가 문제 학생과의 상담 기록을 적어둔 일지가 수십 쪽이 넘는 것을 봤다. 곧이어 미안한 마음을 느꼈다. 괜히 내가 한 말 때문에 이 학교에서 고생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죄책감까지 느껴졌다.
문제는 A 선생님이 지난 학교에서 받은 상처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는 것이다. 교사로서의 자존감이 많이 깎여져 나간 상태에서, 또다시 비슷한 경험을 반복하게 된 것이다. 숱한 생채기로 가득한 내면의 새살이 돋을 틈도 없이 매일매일이 힘든 하루의 연속이었다. 문제를 일으키는 소수의 아이들 때문에, 나머지 아이들을 신경 쓰지 못한다는 미안함도 커져만 갔다. 그렇게 한 학기를 흘려보냈다.
문제는 2학기 초반에 발생했다. A 선생님의 반 학생 몇 명이 담임 선생님에 대한 욕설이 적힌 구겨진 가정통신문을 들고 학생부실로 찾아간 것이다. 그 가정통신문에는 수정 테이프로 “씨발년, 고아년, 개같은 년 xxx”이라고 적혀 있었다. 해당 학생들은 이 욕설을 누가 적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심 가는 아이가 있다고 제보했다. 그리고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학생부 부장님은 의심이 가는 학생 몇몇을 추려 추궁했지만 해당 학생들은 부인했다고 한다. 오히려 제보를 한 학생들이 누군지를 당당하게 따져 물었다고 한다. 학생부 부장님은 그 사실을 교감, 교장 선생님에게도 알렸다. 그리고 A 선생님에게 알렸다. 관리자들은 A 선생님에게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었다고 한다. 가볍게 흘려들을 수도 있는 말이지만, A 선생님은 그 말에서 학교 관리자들의 마음을 느꼈다. A 선생님이 이 일을 그냥 넘어가 주기를, 교권보호위원회와 같은 복잡한 절차를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A 선생님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담임 선생님을 생각해 제보한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해당 학생에 대한 처벌은 반드시 필요했다. 무엇보다 A 선생님의 다친 마음을 회복하는 일이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강력하게 교권보호위원회 개최를 요청하라고 말했다. 바뀐 법률에 따라 피해 교원이 교권보호위원회를 요청하면 당장에 가해 학생과 피해 교원에 대한 분리 조치가 이루어져야만 했다. 그러면 해당 사안이 해결될 때까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주말 동안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교권보호위원회가 개최될 경우 모든 업무를 담당해야 할 교사는 나였다. 심지어 가해 학생과 피해 교원의 분리 조치가 적용될 경우 그 반의 담임으로 들어가야 하는 교사도 나였다. A 선생님을 위로하고 학교의 책임회피에 분노하면서도 마음 한편엔 앞으로 내가 처리해야 할 일들이 귀찮게 느껴졌다. 사안을 조사하고, 위원회를 소집하고, 회의록을 작성하는 일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해야 하는 복잡한 절차들이 눈앞에 그려졌다. 혹시나 해당 과정에 문제가 있으면 어떡하지, 학생과 학부모가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며 행정소송을 걸면 어떡하지 등등. A 선생님의 고통에 슬퍼하며 위로하는 내 모습 뒤에, 야비하고 간사한 생각을 하는 내가 있었다. 이중성과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감추며 애써 누군가를 위로하려고 연기하는 내가 있었다. 그 순간 견디기 힘든 자괴감이 구역질하듯 밀려 올라왔다.
결국 그 선생님은 교권보호위원회 개최를 요청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거부했다. 피의자가 특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권보호위원회를 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주변 선생님들에게 A 선생님이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매일 듣게 되었다. A 선생님은 다친 마음을 스스로 달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결국 A 선생님은 한 달가량 병가를 냈다.
그 소식을 듣고 다시 한번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을 느꼈다. 내 말을 듣고 이 학교에 오게 된 A 선생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더욱 힘들었던 건 그 선생님의 고통과 아픔에 진정으로 다가가지 못했던, 오히려 외면했던 나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었다. 타인의 슬픔을 슬퍼하는 척하면서, 의도적으로 그 슬픔을 외면하고 회피하려던 나의 이중적인 마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타인을 향한 마음 씀은 내 삶의 테두리를 넘어오지 않는 선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과연 진정한 위로란, 연대란 가능이나 한 것일까. 지금까지도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A 선생님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기가 힘들다. 남은 기간 동안 A 선생님이 받은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유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