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장의 커피는 어떻게 다른가?
"이탈리아에서 에스프레소는 음료가 아니라, 하나의 종교이자 의식(Ritual)이다."
"휴식할 때나 길을 걸을 때나, 커피는 만병통치약이다."(A riposo o in cammino, il caffè è un toccasana.) - 이탈리아 속담
커피 하면 이탈리아, 이탈리아 하면 커피.
이탈리아 사람들의 커피 사랑은 전세계를 아울러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커피는 음료를 넘어서 삶이자 문화이다. 오죽하면 어지간한 식당과 술집에서 커피 머신과 바리스타를 갖춰놓고 에스프레소를 주문할 수 있을까.
16~17세기 베네치아가 동방 무역의 중심지로 떠오르며 오스만 제국에서 약재로 쓰이던 커피가 최초로 유럽 전역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18세기에는 유럽 최초의 커피 하우스인 '카페 플로리안'이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에 문을 열었고 19세기에는 최초의 현대식 에스프레소 머신이 이탈리아에서 개발되었다.
이탈리아는 커피 재배가 불가능한 기후를 가지고 있지만 무역의 중심지라는 이점을 살려 전 세계의 생두를 수입할 수 있었고, 여러 산지의 원두를 섞어 맛을 내는 '블랜딩' 기술과 생두를 볶아 향미를 증진시키는 '로스탕' 기술을 극한으로 발전시켰다. 결국 우리가 즐기는 현대적인 커피의 테크닉과 기술은 대부분 이탈리아가 그 근원지라고 해도 무방한 것이다.
카페를 운영중이고 카페 창업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7박 9일간의 이탈리아 여행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서 종주국의 커피문화를 살펴보고 배울점을 찾는 탐구의 시간이었다.
오늘은 카페를 운영중인 사장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탈리아와 한국의 커피문화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탈리아에는 카페가 없다?
이탈리아에서 구글 맵을 살펴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카페라는 상호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분명 커피의 종주국인데 왜 카페가 없지?' 싶을 수 있지만 비밀은 이탈리아식 커피 문화에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카페(Cafe)'는 이탈리아에서 '바(Bar)'라는 이름으로 영업한다. 보통 바(Bar)가 위스키나 칵테일을 판매하는 술집으로 여겨지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이탈리아의 바는 카페, 식당, 술집(주류)의 역할을 모두 수행한다. 아침에는 출근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에스프레소 및 커피를 팔고, 점심에는 파니노(이탈리아식 파니니)나 샌드위치 등의 간단한 식사를, 저녁에는 퇴근한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는 것이다.
'카페(Cafe)' 라는 명칭은 공간이 아닌 '커피' 그 자체를 뜻한다(그냥 커피를 달라고 하면 못 알아듣는 척 능청을 떤다). 따라서 커피와 음료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카페'와 이탈리아의 '바'는 운영 면에서 많은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의 커피 문화는 '속전속결'이다. 싱글 샷(1샷)으로 내린 작은 에스프레소에다 설탕을 몇 스푼 붓고는 단숨에 마시고 자리를 떠난다. 심지어는 굳이 자리에 앉지도 않는다. 테이블과 의자를 이용할 경우 Coperto코페르토라는 자릿세가 부과되기 때문이다. 많은 현지인들은 바에 서서 샷을 내리는 바텐더와 짧은 스몰토크를 나누며 커피를 마신다.
500ml에 달하는 커다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우리의 카페 이용문화와는 대조적이다. 이 부분에서 커피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탈리아의 기본 커피는 1샷 짜리 에스프레소이다. 재밌게도 현지에서 에스프레소 1잔을 주문하는 명칭은 Caffè normale (보통 커피)다. 이들에게 에스프레소는 '당연한 커피'인 것이다. 따라서 모든 원두 추출 과정은 1샷 에스프레소를 전제로 하기에 생각보다 가볍고 연하다.
한국 카페의 에스프레소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기본값으로 맞춰 세팅된 경우가 많다. 실제로 우리 매장의 음료 판매 매출의 40%를 아.아가 담당한다. 많은 양의 물과 얼음에 섞일 것을 전제로하기에 커피의 향과 맛을 강하게 세팅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한모금 마신 뒤에 남는 여운을 좋아하기에 이탈리아보다 훨씬 진한 에스프레소를 사용하게 된다.
이탈리아에서 에스프레소는 음료가 아니라, 하나의 종교이자 의식(Ritual)이다.
이탈리아인들의 커피 사랑은 때로 보수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문을 거절하거나 마지못해 해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신성한 '에스프레소(카페 노르말레)'에다가 물을 타다니! 그들에게는 공들여 만든 작품을 망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아내와 로마의 3대커피로 유명한 '타짜도르 커피'에 갔을 때였다. 우리는 하루에 20km를 걷는 강행군을 3일째 하고 있었고 이탈리아의 커피 문화를 느끼기 위해 현지인들이 주로 마시는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 등의 음료를 마시며 애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 벌컥 들이키고 싶은 욕구를 참고 있었다.
그런데 바티칸 투어를 마친 오후, 강렬한 햇볕을 받으며 도착한 타짜도르 커피의 메뉴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떡하니 적혀져 있는 것이 아닌가? 본고장의 에스프레소를 먹고자 하는 의지는 한국인의 본능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우리는 홀린듯이 "듀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빼르파보레(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 를 말했고 주문을 받은 바리스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냉장고에서 커다란 물통을 꺼냈다.
그 통에는 검은색 아메리카노가 가득 차 있었고(...) 유리 컵에 얼음을 조금 담아 그 자리에서 부어 우리에게 내어주는 것이었다. 나는 경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에스프레소의 신성함을 모독한 자에게 내리는 단죄인가 싶어 눈치를 보며 한 모금 마셨고 은은하게 느껴지는 단맛에 이 음료가 '카페 프레도(에스프레소에 설탕을 섞어 차갑게 마시는 여름 음료)'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객의 요구보다 전통의 맛과 방식을 중요시하는 '보수성', 이 점은 대형 프렌차이즈 'S사'가 이끌고 있는 고객 편의 중심의 커스텀 커피와는 완전히 반대로 느껴졌다. 세계의 카페는 현재 'S사'가 지배하는 흐름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시애틀 주에서 시작되어서 '시애틀식 커피'로 불리우는 카페들은 우유 종류 변경, 다양한 시럽과 소스, 세분화 된 커스터마이징 등의 요소로 소비자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우유는 오트로 바꿔주시고요, 시럽은 저당 시럽으로 넣어주세요. 뜨거운 아메리카노에는 얼음을 2조각만 넣어주시구요. 아, 라떼는 아주 뜨겁게 해주세요!"
이런 요구를 이탈리아의 바리스타에게 했다가는 "노!(NO)"를 외치며 당신을 쫓아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만큼 그들의 직업적 자부심에는 순결한 커피에 대한 전문성과 주인의식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 밖에도 이탈리아는 아무리 작은 카페여도 다양한 종류의 빵을 만들어 판다거나(빵을 주식으로 하기에 수요가 충분함) 생각보다 에스프레소의 추출 과정이 단순하다는 점(디스트리뷰터를 사용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등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사회에서 카페라는 공간이 어떤 역할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각자의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식 커피에 대하여 막연하게 갖고 있었던 환상과 자격지심은 그들의 바를 들여다보며 많이 해소되었다. 우리나라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운 '커피 공화국'이고 소비자들의 눈높이와 바리스타들의 수준이 상향평준화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이탈리아에서 본 바리스타들의 에티튜드를 기억한다. 접객하는 태도와 먼저 말을 걸어 그들의 공간을 손님의 아지트로 만드는 마술. 이 점이 우리의 정형화된 응대와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