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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소영 Apr 06. 2022

이젠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된 못생긴 '약과'

[오뚜기 제2회 푸드에세이 공모전 참여작]

이젠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된 못생긴 '약과'

못생긴 약과, 이젠 너무나 그립다.

사각형 모양의 못생긴 약과는 명절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 집을 대표하는 명절 음식이었다. 가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할머니 표 약과를 맛있게 먹었지만 난 못생겨서 싫었다. 맛도 없었다. 예쁜 약과가 시중에 많이 나와 있는데 왜 이 약과를 매번 손수 만드는지 손도 많이 가는데 이걸 왜 오랜 시간 들여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명절날 아침은 늘 같은 패턴이었다. 할머니는 세월이 묻은 투박한 손으로 약과 반죽을 직접 했다. 밀가루와 달걀, 식용유를 이용한 반죽이었다. 손으로 직접 재료들을 섞어 찰기가 적정 수준에 이를 때까지 빚고 또 빚었다. 반죽이 완성되면 도마에 올려놓고 반죽 밀대를 이용해 일일이 얇게 펴냈다. 그리곤 칼을 사용해 한입 크기 네모난 모양으로 잘랐다. 식용유를 한가득 부은 웍에 한입 크기 약과를 넣으면 네모난 모양이 부풀어 올랐다. 기름을 먹고 배가 불뚝 나온 약과는 갈색 옷을 곱게 입고 튀겨졌다. 할머니는 고루 익은 약과를 건져내 기름기를 빼낸 후 큰 통에 조청을 부어 약과를 완성했다.

수제 약과는 못생겼지만 특유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을 자랑했다. 고등학교 때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에게 대접할 것이라곤 약과뿐이었다. 가족 외에 수제 약과를 소개하는 첫자리였다. 할머니 표 약과를 맛본 친구는 "너무 맛있다"라고 감탄했다. 지금도 가끔 그 약과가 정말 맛있었다고 얘기하곤 한다. 그런 호평을 그때 당시 이해하지 못한 나는 "그게 뭐가 맛있냐?"라고 되물었다. 명절마다 집에 있던 음식이기에 그땐 귀한 줄 몰랐다.

결혼 전 예비 시댁에도 수제 약과를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다. 마땅히 예비 시댁에 가져갈 명절 음식이 없었던 나는 할머니 표 약과를 챙겨 예비 시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머니는 수제 약과에 "손이 정말 많이 가는 음식인데 이걸 직접 하셨냐"라면서 "맛있다"라고 미소를 지으셨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성인이 됐고 할머니는 치매 때문에 기억이 점점 흐릿해지면서 더는 약과를 만들 수 없게 됐다. 10여 년 전 못생긴 약과와 마주한 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약과는 내게 명절을 상징하는 추억의 음식이 됐고 자연스럽게 그 흔적을 감추게 됐다.

지금은 안다. 할머니 표 약과 특유의 담백함과 적절한 단맛이 어우러진 추억의 수제 약과 맛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이젠 돈을 주고도 그 맛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더 그립다. 할머니와 함께 밀대를 밀면서 약과를 만들던 그때 그 시절, 그리고 갓 튀겨진 약과를 먹으며 시간을 보내던 그때가.   

최근에 엄마와 수다를 하다가 할머니 표 약과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가 약과를 맛있게 먹던 그때 난 1도 공감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알겠다고, 할머니 표 약과가 요즘은 가끔 생각난다고 말이다. 엄마는 웃어 보이며 "투박하지만 맛있었다"라고 추억했다. 난 이 약과가 그리워질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약과는 할머니와의 추억의 연결고리가 됐고 할머니를 떠올리면 수제 약과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만약 거리를 지나다 할머니 표 수제 약과와 비슷하게 생긴 약과를 마주한다면 난 그냥 지나가지 못할 것 같다.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고 할머니 표 추억의 맛이 그리워 사지 않을까. 하지만 그 추억의 맛을 그대로 구현하기란 싶지 않을 것이란 걸 안다. "할머니 이걸 왜 또 만들어. 힘들지 않아?"라고 물으면 "그래도 명절에 가족들이 다 모이는데 함께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게 있으면 좋지 않냐"라고 웃던 할머니가 더는 함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제 마감될 때 본인인증 오류까지 있던 걸 보면 공모전 경쟁률이 어마어마한 것 같아 브런치에라도 아까우니 흔적 남겨본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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