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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Mar 14. 2022

[입원일기 #1] 내일이 지나면 후회를 할까?

걱정 많은 직장암 3기 환자 가족의 입원일기

내일입니다. 수술을 해도, 항암치료를 더 해도. 무엇을 해도 담당 주치의를 원망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수 없이 많은 고민을 하였는데요. 저희 아버지는 더 이상의 항암이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해, 수술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고민은 참 길었는데, 수술 날짜를 잡고 나서는 정말 빠른 속도로 시간이 흘렀어요. 모든 순간이 아깝고 아쉬웠습니다.




돌아보니 정말 많은 사람의 도움과 격려를 받았어요. 일 할 사람이 없어 휴직을 쓰기 어려운 시기에, “에라 모르겠다. 내가 제일 중요하지” 하면서 1달 휴직계를 냈을 때도. 생일파티 자리에서 아버지 얘기를 하며 뜬금없이 분위기를 망쳐 놓을 때도. 매일 밤 똑같은 걱정을 늘어놓으며, 답도 없는 이야기에 허우적거릴 때에도. 덤덤하게 제 곁을 지켜주던 사람들 덕분에, 아직까진 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아버지 곁을 지키는 게, 저 혼자가 아니라 엄마, 언니가 함께여서 참 다행이에요. 오늘은 병원에서 수술 동의서를 작성했는데요. 종이로는 10장이 넘었는데, 죄다 겁주는 이야기들 뿐이었어요. “수술 이후에는 중환자실에서 못 깨어 날 수도 있다, 수혈을 하다 감염이 될 수도 있다, 사망을 할 수도 있다.” 보기만 해도 끔찍한 단어들을 직면하며, 세상에서 제일 쓰기 싫은 제 이름을 쓰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는데요. 함께 상의할 사람이 있고,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이렇게 감사하고 소중한 일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어요.

잠이 잘 안 오네요. 내일이 되면,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후회를 하게 될까요? 우리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행복한데, 이 시간을 과감히 포기하고 수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건 아닌지.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갑니다. 많은 환자들을 만나온 주치의 분의 경험과 예측이 환상처럼 빗나가 주기를 상상해봅니다. 넘치는 후회를 하더라도, 순간순간 아프지 않게 잘 이겨낼 수 있기를. 아버지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기운이 아버지의 수술대까지 꼭 전달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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