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많은 직장암 3기 환자 가족의 입원일기
아버지는 새벽 내내 관장으로 씨름하다 결국 한 숨도 못 주무신 채 수술대에 올랐다. 코로나 때문에 병원 체계도 엉망이다. 예정되어 있던 수술에도 코로나 확진자가 되어 급히 퇴원을 하고, 수술 후 예상치 못한 균 발생으로 격리 병동으로 이동한 환자도 있다. 아버지도 어제 아침 목이 칼칼해 PCR 검사를 받았다. 모든 것을 수술 날짜에 맞춰 몸의 컨디션을 조율하고 있는데, 이제 와서 코로나에 걸리면 어떡하나 마음 졸이며 음성 판정을 받았다.
입원실은 더워서 이불 덮을 일이 얼마 없다. 그런데 수술실은 너무너무 추워서 겨울용 이불을 꽁꽁 싸매고, 수술실로 가야 한단다. 그래서 이불 사이로 빼꼼하고 보이는 아버지 얼굴에 수술 전 한마디를 남기고 그렇게 아버지는 우리 손을 떠났다.
수술이 하루 종일 걸릴 거라는 얘기는 들었었다. 그럼에도 수술시간이 최대 8시간이 넘어가면 다른 장기까지도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에, 8시간을 넘기는 건 꼭 피해야 하는 일 중 하나였다. 오전 8시, 휴대폰 문자가 울렸다. 수술을 시작한다는 알람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엄마, 언니의 손을 잡고 문 앞을 하염없이 동동거렸다.
다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오전에는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했다. 오늘 저녁을 대비하기 위해 그동안 미뤄왔던 쪽잠도 자고, 자리를 비울 수 없어 할 수 없던 샤워도 했다. 바나나우유 하나를 앞에 두고, 아버지가 했던 “지현이 네가 많이 먹어야 아빠를 잘 돌봐주지” 이 말이 계속 떠올라서, 입맛은 없었지만 씩씩하게 곰탕 한 그릇도 먹었다. 걱정되는 마음과 달리 맛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그 어느 때보다 느렸다.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뒀던 과제도 다 했는데, 그때가 겨우 12시더라. 2시면 나오겠지, 3시면 나오겠지 의미 없는 시간으로 하루를 보내다가 아버지를 만난 건 수술 9시간째, 오후 5:04였다.
이렇게 늦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수술 8시간 째인 4시부터 5시까지는 “아 이거 뭔가 잘못됐을 수도 있겠다”하는 생각이 들면서 잘 쌓아온 멘탈이 무너졌다. 그렇게 만난 아버지는 퉁퉁 부은 모습에 온 몸에 선이란 선은 꽂아있었고, 손떨림이 침대를 울릴 정도로 추워했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했던 말이다. 한 단어, 한 단어의 목소리가 귀에 울리는 것 같아 남겨놓는다.
- 이불
- 진통제
- 추워
- 엄마랑 언니 오라고 해
- 고마워
- 아파, 너무
- 배가 쓰려
- 할머니, 장모님 연락
- 경수지
- 따뜻. 손 얼굴에
경수지는 우리 가족 셋 이름을 각각 한자씩 딴 단어인데, 작명 잘하는 우리 언니가 아버지 수술 전 무서우면 꼭 외치자고 약속했던 용어다. 더위 타는 내가 어쩌다 아버지 얼굴에 손등을 스쳤는데, 그게 따뜻하다며 얼굴에 올려놔달라는 말도 했다. 내 따뜻한 손이 이렇게 귀한 일도 하는구나 처음으로 느꼈다.겨울에도 더위타는 내가 나 스스로 너무 좋았다.
내일은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행인 게 있다면, 중환자실은 면했다는 거다. 내일은 짧아도 좋으니, 단 하나라도 아버지가 기뻐할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