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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Mar 16. 2022

[입원일기 #3] 숨 고르게 쉬기

걱정 많은 직장암 3기 환자 가족의 입원일기

어제저녁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입원실 상태는 엉망이었다. 아버지의 눈동자는 마취에서 덜 풀린 상태여서 흐리멍텅 했지만, 잠에 들면 안 된다는 간호사님의 말에 혹시라도 힘이 될까 아버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건넸다. AI기계 마냥 아버지 휴대폰에 온 카톡들과 격려의 말들을 읽어주는데, 속도가 빠르다며 “빨라”하고 두글 자 운을 떼는 아버지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 뒤로 난,  눈물에 고인 흐릿한 글자들을 엄청 천천히 읽으려 애썼다.




수술 다음날 새벽 3시, 4시, 5시. 병원에서는 쉴 새 없이 아버지 이름을 불렀다. 혈당체크, 혈압체크, 수액 체크… 마지막에는 누워서 숨 쉬는 것만 해도 어려운데, 휠체어를 타고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단다. 잠은 다 잤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아버지도 “꼭 지금이어야 합니까”라고 내심 불편함을 드러냈다. 간호사님의 말로는 내일 의사 선생님을 아침에 보려면, 상태 체크를 새벽에 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야말로 “병원은 정말 못 말려”의 정점을 찍었달까.

어찌어찌 엑스레이까지 찍고, 돌아왔다. 그랬더니 병원에서는 이 호흡기구를 이용해 숨 쉬는 연습을 시켰다. 수술 후 폐가 많이 쪼그라들어 있어서 이 연습을 하지 않으면, 열도 많이 나게 되고 합병증도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수술 전엔 노란색 라인에 줄 쳐져 있는 부분까지 올라갔었고, 힘주어 숨을 쉬면 파란 공도 거뜬히 올렸었다. 지금은 빨강 공 하나를 들썩이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병원으로 찾아와 준 언니 덕분에 좋아하는 꽃구경도 했다. 김밥천국 가서 참치김밥도 먹었고, 카페에 가서 바닐라라떼도 먹었다. 생활 반경이 좁아지니 답답한 느낌은 어쩔 수 없은데, 이 정도쯤

참는 건 아직까지 나에게 큰 무리는 없다. 그동안 잠은 8시간 이상 꼭 자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병원 복도에 누워 쪽잠을 자면 1시간을 자도 8 시간을 잔 것처럼 상쾌하다. 역시 사람은 적응력이 위대한 존재인가 보다.

호랑이 얼굴이 그려진 바나나우유 한 잔은 나한테는 비교적 큰 힘을 주는 것 같다. 아버지가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빨대 꽂은 물병과도 짠 하며 먹을 수 있고, 아버지 앞에서 먹어도 별로 미안하지 않지만 속은 든든하게 채워주는 만능 음료다.


아버지 뱃속 통증은 어제보다 많이 줄었다. 유튜브에서 직장암에 대해 공부하다 봤던 장루 주머니도 제대로 확인했다. 이제 시작이다 싶지만, 그래도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보내고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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