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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Mar 31. 2022

[입원일기 #6] 병원은 힘들어

걱정 많은 직장암 3기 환자 가족의 입원일기

입원 생활 18일째. 오늘 아빠는 매일같이 챙겨보던 <사랑의 꽈배기> 드라마도 제쳐놓고 밀려오는 잠을 해결하고 있다. 우리는 6인실에서 제일 늦게 들어온 환자였는데, 어느새 가장 오래 이 자리를 지키는 환자가 되어버렸다.




한 명씩 퇴원을 할 때마다 느껴지는 부러움과 고독함. 그렇다고 퇴원하는 발걸음도 그닥 가볍진 않다. 퇴원 후에도 대부분이 외래로 치료를 더 이어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겨진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고양이 발걸음이 된다. 어떤 분은 머쓱한 나머지 “쾌차하세요.” 한 마디 남기며 홀연히 떠나간다. 미소도 아닌 것이, 연민도 아닌 것이, 동질감도 아닌 것이. 일상에서는 많이 본 적 없는 신기하고도 특별한 감정이다.


오늘도 매일처럼 공용 화장실에서 씻으려는데, 다른 보호자와 말을 섞게 됐다. 그쪽도 아버님이 암수술을 하셨는데 복강경 수술로 하려다 상태가 심각해 개복수술을 하셨단다. 안타깝게도 이미 암세포가 다른 장기에도 심각하게 번져있어 수술로 모두 제거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항암 치료를 또 시작해야 하는데, 더 마음이 아픈 건 아직 아버님께는 이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는 거다. 무엇이 진짜 그 아버님을 위하는 걸까?


아픈 사람은 외롭다.

가족이 곁에 있어도, 간병인이 24시간 붙어 있어도 결국 이겨내야 하는 건 혼자다. “참아보자”, “이겨보자”, “힘내자” 하는 건 입으로 하는 말 뿐이다. 힘든 시간 함께 곁을 지켜준다고 하지만, 내 존재만으로 그 아픔을 대신하기엔 한없이 부족하다.

병원에 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감정 상하는 일도 많이 있다. 어제는 우리 병실에 한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함께 입원을 하셨는데, 오자마자 옆 간병인이 생사람을 잡는다며 병원을 한바탕 뒤집어 놓으셨다. 아무 이유도 없이 경찰에 신고하라고 소리를 지르시더니, 그때부터 화가 잔뜩 나셔서 조그마한 소리에도 “날 무시하냐”며 “씨 x”, “병 x 같은 x이”, “나를 x같이 아나” 나를 향해 욕을 해댔다.


얇은 커튼이라도 제발 날 지켜줬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난 모든 게 오픈되어 있는 딱 내 키만 한 침상에 비개 하나, 이불 하나 가진 약한 존재였다. 내 곁엔 내가 지켜야 하는 아빠가 보였다. 한바탕 소란이 있은 뒤, 그분들은 자기 분에 못 이겨  계속해서 병원 측에 문제제기를 했고 결국 다른 병실로 이동했다.


열심히 해보려는 감정 위에 어이없는 욕이 스쳐갔다. 조용한 병실에서 난 잠시 낙담했다. 힘든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곳에서 이렇게 전쟁 같은 상황을 마주해야 한다니. 병원 살이.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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