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많은 직장암 3기 환자 가족의 입원일기
볼 때마다 새삼스러운 인공 장루. 직장암은 항문과 가까이 있어 수술을 해도 항문의 기능을 살리지 못할 때가 있다. 보통 직장암 3, 4기에 접어들면 선택권 없이 인공 장루를 해야 하는데, 수술 후 일시적일 수도 있고 우리 아빠처럼 영구적일 수도 있다.
맨 처음 의사 선생님께 “평생 인공 장루를 차고 살아야 합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린 되물었었다. “평생이요?” 그리고 돌아온 아주 담백한 대답. “네. 평생요” 그리고는 이런 말씀을 더 해주셨다.
“물론 인공 장루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처음부터 배에 항문이 있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어차피 해야 하는 거라면,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인공 장루도 관리만 잘하면 지금보다 훨씬 편하게 지낼 수 있어요. 나중에 다시 만들어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꽤 있답니다”
인공 장루가 편하다고?
사실일까? 정말 궁금했다.
혹여 우리가 수술하기도 전에 겁부터 먹을까 봐, 아님 환자에 대한 예의나 위로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인공 장루를 아예 몰랐을 때에는, “항문이 아닌 배로 대변을 해결해야 한다”는 막연함과 생소함 때문에 덜컥 무서웠다. 아빠도 10년 전쯤 병원에서 인공 장루를 한 사람을 봤었는데, 본인이 인공 장루를 하게 되어 믿기지 않고 유감이라 했다.
아빠 몸에 인공 장루가 달린 지 18일 차. 아직 우린 인공 장루와 친해지는 단계다. 수술 직후에는 장루 부위가 꿰매져 있기 때문에 며칠간 금식을 한다. 그래서 장루의 교체 주기도 비교적 길고, 장루에서 나오는 배설물도 거의 물거나 맑다. 그러다 미음에서 죽, 죽에서 밥으로 넘어가면 장루로 나오는 배설물도 조금씩 어두운 색으로 변한다.
생소하더라도
얼굴을 찌푸리지 말자.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빠의 경우 15일 차쯤 대변다운 대변이 나왔다. 사실 난 병간호를 시작하기 전부터 다짐했던 게 딱 한 가지 있었다. 장루로 대변이 나왔을 때, 아빠 앞에서 절대 얼굴을 찌푸리지 않는 것. 주제에 벗어나긴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엄마는 첫 생리를 했다고 저녁으로 피자를 사줬었다. (이 시절 피자는 나에게 최애 음식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평생을 생리는 마법도, 불행도 아닌 생리현상 그 자체로 인지할 수 있었다.
이 사건처럼 아빠에게 장루에 대한 첫 기억도 긍정적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부정적이지만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조금 오버스럽지만 배에서 나오는 첫 방귀에도 소심한 박수와 환호를, 첫 대변에는 마치 시상식과 같은 담대한 축하를 전했다. 실제로도 아빠의 배여서 그런지, 튜브같이 툭 튀어나온 배에 우주정거장처럼 세워진 장루가 낯설지만 귀엽기도 했다.
장루에 대한 글은 간간히 계속 쓰고 싶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장루에 대한 경험이나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더라. 우리처럼 인공 장루를 가진, 혹은 갖게 될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조금씩 기록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