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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Apr 04. 2022

[입원일기 #8] 40초 회진

걱정 많은 직장암 3기 환자 가족의 입원일기

우리 아빠는 직장암 수술 후유증으로 오른 쪽 다리가 계속해서 저려왔다. 수술부위와 장루는 시간이 지날수록 하루하루 나아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어째서인지 다리는 날이 갈수록 더 통증이 심해져만 갔다. 안마기로 두들겨 보기도 하고, 부드럽게 주물러보기도 하고, 아이스팩을 얹혀놓기도 했다. 통증을 이겨보려고 별 수를 다 써봤지만, 4시간마다 맞는 진통제만이 잠시라도 평온한 1-2시간을 보장해줄 뿐이었다.




호소할 데는 많았다. 3교대를 하는 간호사들은 매번 “어디 아픈 곳은 없으신지”를 물어왔고, “오른쪽 다리가 아프다”는 말은 수도 없이 했다. 같은 말은 몇 번쯤이나 해야 통증이 조금이나마 줄 수 있을까 의심을 하면서도, 정작 처방이 나는 건 진통제뿐이라 허무했다. 우리는 수술 부위가 아닌 오른쪽 다리가 왜 통증이 있는 건지 알고 싶었지만, 이는 담당 주치의만이 알 수 있다고 했다. 혹시라도 수술 때 뭔가 잘못된 건 아닐지, 불안함에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애석하게도 주말엔 주치의가 회진을 오지 않는다. 아파도 참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우린 또다시 두드리고, 주무르고, 찜질하는 하루가 정확히 두 바퀴 반복됐다. 저녁 9시에 진통제를 먹고 나면, 새벽엔 꼭 2-3번씩 깨서 진통제를 추가로 맞으며 겨우 겨우 잠에 들었다. 월요일이 됐다. 흰 의사복을 입은 사람들이 “000님”을 외치며 병실에 들어왔다.


환자인 아빠를 앞에 두고, 의사들끼리 알아듣는 용어를 쓰며 무언가를 결정하는 듯했다. 나도 질세라 미리 적어두었던 노트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물었다.

궁금한 점이 생길 때마다 잊을까봐 적어놨던 노트. 내 순발력이 부족한건지, 회진 시간이 짧은건지 이 중 하나밖에 못물어봤다.


(나) 교수님,
저희 아버지 다리는 왜 그런 건가요?
나아지긴 하는 건가요?


(주치의) 네, 오래 걸립니다.
수술 중 오른쪽 다리의 신경이 눌린 거라,
퇴원하셔도 진통제 복용하시면서
장시간 회복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40초 만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다. 주말 동안 아빠의 손 발이 난데없이 저려서 그 말도 하고 싶었고, 다음 주가 회사 복귀라 대략적인 퇴원 일정도 묻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허망했다. 신이라도 왔다 간 것 마냥, 매일같이 교수님의 앞이 아닌 뒷모습을 보며 “감사합니다”를 말하는 우리 모습이 조금 초라하게 느껴졌다. 분명 잘 정리해 물어보면 답해주실 분인데, 내 순발력이 부족한 건지 회진 시간 자체가 짧은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신경과 교수님이 코로나에 걸렸다. 주치의가 없는 이상 더 이상 진료를 받을 수 없게 된 환자들은, 소변줄을 맨 채로 퇴원 제안을 받기 시작했다. 우리 아빠도 소변 때문에 꽤나 고생을 했는데, 소변줄을 제거하고도 소변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관을 연결해 인위적으로 소변을 빼냈다. 5번쯤 시도해도 되지 않을 때, 소변줄을 다시 연결했고 그렇게 뺐다 꼈다를 연속하며 아무도 알 수 없는 또 다른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수술 후 아빠 몸엔 10개도 넘는 줄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양쪽의 피주머니, 주사, 혈액, 소변줄… 그중 거의 마지막으로 아빠를 놓아주지 않고 있는 소변 줄 하나. 사라진 줄들을 보며 느리지만 조금씩 회복되고 있음을 느낀다. 사람이 가진 날것의 강인함이란 이런 걸까. 무엇보다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 혼자만의 싸움을 씩씩하게 이겨내는 아빠를 보니 학교나 회사에서 배울 수 없었던 강인함도 많이 배우게 된다. 멋진 우리 아빠. 조금만 힘내주었으면 좋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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