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마차 4주 차에 일어난 일들 2020.02.24.
자가격리 14일의 시작과 역전 : 한국 확진자 증가 2020.02.24.
-황금마차 4주 차에 일어난 일들
황금마차를 운영한지도 4주 차, 운영하는 나에게도, 이용하는 교민들에게도 생활이 되었다. 시간이 되면 잠시 들르는 보부상처럼 도서관이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책을 보충하고 나와서 칭다오 청양부터 천태까지 한 바퀴 도는 루틴이 생겼다. 어제까지는 정말 좋았다. 책이 위로가 되고, 문학이 힘이 되는 모습을 보며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
한국도 확진자가 나오긴 했지만, 그렇게 우려할 수준의 증가세는 아니었다. 2월 18일 대구 신천지 신도가 감염되고, 20일 최소 23명의 감염자가 추가로 발생했다. 이 바이러스의 감염 속도가 얼마나 무서운지 체감하는 중이라서 불길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고, 홍통만성에 거주하시는 교민들 가운데 한국에 있는 분들이 이곳의 상황은 어떤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2월 22일 기준 확진자 111명의 확진자가 나온 청도 대남병원도 신천지 확진자와 관련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고, 다음 날인 2월 23일부터 중국에서도 이 소식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2월 24일, 칭다오에 살면서 혐한 감정은 많이 느끼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인종 차별을 당할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같은 유색인종이니까.
중국 칭다오에 있는 아파트에는 대부분 단체방이 있다. 그 단체방에 온갖 혐오의 발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도서관이 있는 홍통만성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이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한민족이라고 말했던 사람들 모두 한국인들을 욕하기 시작했고, 욕에 욕을 더해 증오와 혐오로 이어졌다. 홍통만성에 있는 교민들은 문 밖으로 나가기가 무서워 반납이 어려울 거 같다는 문자도 보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주로 하던 욕은 "이제 중국은 안정이 되고 있는데, 한국에서 다시 바이러스를 옮기는 중이다." "한국 사람들은 아파트 출입을 못하게 해라." "한국인들 집 봉인하고 14일 격리시켜라." "한국 집들 리스트 공개해라." 등등. 전 세계로 바이러스를 수출한 나라에서 할 말은 아닌 거 같은 발언을 쏟아 냈다.
불과 얼마 전 대한민국에도 마스크가 없는 마당에 마스크가 없는 중국에 마스크를 기증하며 했던 어떤 정치인의 말이 생각났다. "중국은 어려울 때 도우면 평생 친구로 생각한다." 그 소리가 한없이 공허하게 들렸다. 황금마차는 가족 결혼식이 있기 전인 3월 15일까지 운영하려고 했었다. 나도 목숨은 하나, 지켜야 할 가족이 있다. 이제 앞으로 일주일, 이게 나의 최선일 거 같다.
칭다오는 현재 한국에서 입국하면 14일 동안 자가격리를 해야 된다. 14일 동안 가압류된 집처럼 빨간 스티커가 붙여지고 가택연금의 상태가 되다니. 귀한 집들에 이게 무슨 누추한 행동인지 모르겠다. 진짜 전쟁이 시작됐다. 나도 내일부터는 '안전'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오늘만 해도 트렁크에 한국 책이 있는 걸 보고, "너 한국 사람이지?"라고 하길래 "어, 나 한국 사람이야. 왜?"라고 했다. 한참을 쳐다보더니 침을 뱉고 갔다. 그리고 나는 단체방에 올라온 욕에 한마디 반박도 못한 것처럼 조용히 트렁크 문을 닫고 교민들을 기다렸다. 이곳은 이방인의 나라, 객으로 살아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알고 있었는데, 생활에서 접하게 되니 씁쓸하기 그지없다.
이 시점에서 중국인에 대한 내 생각에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질문이 있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은 조용히 우리를 응원하고 있겠지? 날 볼 때마다 좋은 일 한다고 웃어주는 도서관 옆집 할머니와 할아버지처럼."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When they go low, we go high." _미셸 오바마
황금마차 조기 종료 공지를 올렸다.
"나는 길을 아껴가며 걸었다."_곽재구 시인
인생을 여행길로 비유한다면 그동안 우린 뒤도 안 보고 너무 열심히 달리진 않았나요? 아내와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한 적도 없었던 거 같습니다. 언젠가 끝나는 길을 너무 빨리 걸었다면 어쩔 수 없이 쉬어가야 하는 지금, 조금 아껴가는 건 어떨까요? 저도 더 이상 이겨내려고 애쓰지 않고 쉬어 가려고 합니다.
경향도서관 황금마차(이동식 임시 도서관)를 4주 동안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지 여론 등을 감안하여 더 이상은 운영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황금마차는 3월 1일부로 운행을 종료합니다. 그동안 커피 등을 건네며 주신 위로와 격려 덕분에 힘내서 길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한국 가는 일종도 있어 운행을 마무리 하지만 한국 가기 전에 마스크 배포 등이 있으면 임시로 운행하겠습니다. 마트 등에서 저나 차를 보면 책 빌려달라고 하세요^^ 트렁크에 책은 싣고 다닐 예정입니다. 저와 이웃인 토화웬 2기 주님들은 산책 나갈 때 가끔씩 번개로 공지하고 트렁크 열도록 하겠습니다 : ) 아무튼 황금마차 운행은 3월 1일부로 종료하기 때문에 이번 주 황금마차를 이용하시는 분들은 도서관이 정상화되었을 때 와서 반납하실 수 있는 분만 대여하시고, 홍통만성까지 오기 어려운 분들은 반납만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이용해주시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목요일에 천태와 신라원에서 뵙겠습니다^^
때로는 포기하는 일에 용기가 더 필요하다. 지금은 용기를 내야 할 때, 포기해야 할 때다.
자가격리 14일과 혐오와 증오. 이런 건 앞으로 다가 올 호텔과 시설 격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2020. 02. 24. 빛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로 들어가며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