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기회 : 호텔 격리 시작과 돕는 손길들

2020.03.06.


황금마차 운행을 마치고 나니 뭔가 찝찝했다. 일을 하다가 만 느낌, 마무리해야 할 일을 누군가에게 넘긴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찰나에 한국에서 입국하신 분들이 갑자기 집이 아닌 시설로 격리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익숙한 공항에 도착해서 통제를 당하고 공항 로비에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격리된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그들의 보호자들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3월 초 칭다오는 여전히 추운 시기인데,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밖에서 덜덜 떨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와 망설임 없이 핫팩을 기증하기로 했다. 핫팩 400장을 주문하고 한인회에 연락드렸는데, 이미 전쟁 중이었다. 영사관과 TF팀을 꾸려서 대응 중이었지만, 교민들은 집이 아닌 호텔에 격리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왔기 때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얼마나 격리해야 되는지도 몰랐다. 아무것도 모른 채 다시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이다.

영사관에 핫팩을 전달하고 왔다

집에만 있는 것도 힘들지만, 집에는 있을 게 다 있다. 내가 쓰던 것들이 다 있다. 그런데 호텔은 다르다. 아무것도 없다. 홍도라는 이름도 생소한 곳에 교민들이 격리되기 시작했다. SNS와 단체방에 추위에 벌벌 떨고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 사진을 보니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영사관과 한인회가 빠르게 움직였고, 나처럼 안타까워하고 뭐라도 돕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교민들이 기부한 물품들

영사관 쪽에서는 그동안 한글학교를 담당했던 팀장님이 TF팀을 맡고 계셨고, 한인회에서는 부회장님 한 분과 소통하며 TF팀에 합류했다. 사람이 두려움을 만날 때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막연하게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도 있었고, 도와주는 사람에게 짜증 내는 사람도 있었고, 차분하게 견디는 사람도 있었고, 돕는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말 많은 모습을 보게 되었지만, 대부분 힘든 상황이었다.


3월 6일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대출하기 시작했다. 심리상담 박사님도 단체방에 들어와서 도움을 주셨고, 한국병원도 의료지원에 나섰다. 한국 마트에선 먼 지역까지 배달을 시작했고, 영사관과 한인회에 많은 기부 물품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를 분류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모였고, 유례없는 위기는 한인사회를 뭉치게 만들었다. 그동안 칭다오 한인사회는 향우회와 다양한 단체나 나와 같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부류 등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왔다. 한인회는 가끔 축제를 주관하는 단체로만 알고 있었고, 영사관은 가까운 곳에 있어서 민원이나 넣는 곳으로 인식했다. 이 전쟁터와 같은 상황 속에 영사관도, 한인회도, 나도, 모든 돕는 사람들도 밤낮으로, 주말에도 일을 했다.

교민들은 격리된 이웃들을 위해 기부하기 시작했고, 한국 마트에서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일손이 부족해서 여러 호텔로 직접 책을 배달하기 시작했고, 하루에 320km를 운전하기도 했다. 무엇을 바라지도 않았고, 전달한 책 중 일부는 못 받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도우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이제 이 상황은 우리 모두의 일이 되었으니까. 결국 위기는 자본주의 생존법칙 아래 잠자고 있던 휴머니즘을 깨우고야 말았다. 그리고 춥고 시린 3월은 열정으로 불타올랐다. 함께 헌신한 이들의 진심 덕분에 교민들은 낯선 환경에서 버틸 수 있었고, 위기는 분위기로 바뀔 수 있었다.


책을 빌리는 분들도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좌), 격리자가 늘어나자 교민들은 알지도 못하는 지역에 격리되기 시작했다(가운데), 격리된 분들에게 전달된 책(우)


내 옆에는 가장 든든한 조력자 아내가 함께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여전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3월 1일 시작된 최악의 위기 앞에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들은 하나가 되었고, 바로 역습에 나섰다. 우린 무너지지 않았다. 21세기 원인불명의 폐렴은 너무 많은 걸 바꿔버렸다. 그저 벚꽃이 피면 보자고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호텔에 들어가는 책에는 차와 커피도 함께 있다. 책과 커피와 음악만 있다면 '북캉스' 아닌가. 부디 교민들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황금마차를 타고 아내와 함께 칭다오와 외곽 지역 호텔을 다니며 책을 전달하는 모습(아직은 직원들이 방호복을 입지 않았던 시절)


2020. 03. 06. 위기와 분위기 사이에서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


이전 09화자가격리 14일의 시작과 역전 : 한국 확진자 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