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받지 못하는 존재(팬데믹), 2020년 3월 제주
2부 고국에 갇힌 이방인 : 삶의 통제권을 잃었을 때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한 번도 내가 사는 나라에서 '갇혔다'라는 표현을 쓰게 될 거라곤 생각해 보지 못했다. 예측 불가능한 바이러스와 마주하며 삶의 통제권을 잃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지만, 완전히 잃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삶의 통제권을 잃어본 적이 있는가? 2부는 고국에 갇힌 어느 이방인의 분투기를 담았다.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팬데믹), 2020년 3월 제주
제주도는 언제나 도피처 같은 곳이었다. 내가 인간에게 환멸을 느꼈을 때 갔던 곳도 제주였다. 함덕해수욕장이 바라보는 숙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밀물과 썰물을 지켜봤다. 2박 3일 그렇게 밀물과 썰물을 보고 나니 마음을 비울 수 있었다.
인생의 반 이상을 해외에서 살았고, 앞으로도 해외에서 살 아내를 위해 신혼여행도 제주로 갔었다. 제주는 나와 아내, 즉 우리의 추억이 있는 곳이고, 우리의 마지막 종착지도 제주라고 말하곤 했다.
가족 결혼식에 참여하기 위해 출국을 했다. 한국도 코로나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아직 호텔 격리 등은 시행되지 않았다. 다만, 중국에서 한국에 가면 이주일 동안은 자가진단 앱을 통해 체온 등을 올려야 되고, 병원에 갈 수 없었고, 가족들도 활동하는데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중국에서 왔다는 말을 안 하고 숙소를 잡을 수도 있었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진 않았다. 고지식하게 서울에 있는 호텔부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고, 우리를 받아주는 곳은 제주밖에 없었다. 아내가 임신 초기라서 칭다오-인천-김포-제주 비행이 부담이 됐지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없어 조심스럽게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고국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초대받아 가는 불청객', 김포공항에서 제주로 가기 전,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며 느낀 기분이다. 중국에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서 무작정 욕을 먹었고, 대한민국에 와서는 중국에 있는 재외국민이라서 무작정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우울한 기분과는 다르게 다양한 육지 사람들을 포용해주는 제주는 유난히 포근하게 느껴졌다. 아내도 친정에 온 듯 편안함을 느꼈다.
숙소는 제주도 성산에 있는 만화가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펜션으로 예약했다. 중국에서 갈 거라는 사실을 사전에 말씀드렸고, 검역 확인증까지 잘 받아서 숙소에 들어갔다. 사실 검역 확인증은 '검역을 완료'했음을 알리는 증명서이다. 이런 증명서가 있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누군가에게 이름도 생소한 펜대믹,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새소리가 들리는 예쁜 숙소에서 아내와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 쌓였던 피로를 풀었고, 가고 싶었던 제주의 책방을 하나씩 찾아서 다녔다. 청정지역이던 제주도 확진자가 생기니 분위기가 달라졌다. 14박 15일을 머물며 펜대믹을 느낀 건, 배 아파하는 아내가 입국 후 14일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응급실도 갈 수 없다는 사실과 중국에서 왔다고 인사드리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긴장시킬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나서였다. 이해도 되지만, 응급실을 갈 수 없다는 현실은 서러웠다. 속으로 그럼 죽을 위기에 처해도 그냥 죽으라는 거냐고 따지고 싶었다.* 칭다오에서 2월에 만나 3월에 극복한 상황을 다시 원점에서 만났고, 우리는 다시 극복해야만 했다.
배 속에 아기가 안전한지 궁금했지만, 우린 확인할 길이 없었고, 아내는 입덧을 시작했다. 제주에서 참 많은 책방지기님들을 만났다. 그리고 위로를 받았다. 두려움에 대해서라면 먼저 느낀 바가 있기에 앞으로 책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위로가 될지도 알고 있다. 부디 대한민국도 이 두려움을 이겨내길 바란다. 두려움의 파도를 넘을 때 책이 서핑 보드가 되리라 믿는다. 코로나 19가 세상을 휩쓸며 폐허가 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럴 때마다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한다. 그리고 "문학은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라는 답을 구한다. 휴머니즘이 죽어가는 세상에 다시 휴머니즘을 불태울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널리 퍼지길.
종달리 책약방, 종달리 소심한책방, 종달리 책자국, 세화 제주 풀무질, 함덕 만춘서점, 수산리 책방 무사, 송달리 제주살롱, 하도리 언제라도북스, 서귀포 인터뷰, 한경면 책방 소리소문, 한림읍 달리책방. 제주에서 만난 11개 책방 모두 무사하시길 바란다. 환대해 주신 책방지기 님들 덕분에 서러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감사, 또 감사드린다.
2020.03.25. 칭다오와 제주 사이에서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
*이 글을 쓰는 2022년 9월 시점에서 보면, 코로나에 걸렸다고 응급실도 못 가서 희생당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이 억울한 죽음이 되지 않도록, 정부의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보상해야 한다. 막연한 두려움은 때론 실체가 없는 그림자와 같다는 사실을 자주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