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봉쇄 2020년 3월 28일, 제주

삶의 통제권을 잃어버린 순간

국경 봉쇄. 2020년 3월 28일, 제주


언제나 최악을 생각하는 편이다. 운전할 때는 결벽에 가깝게 타이어 상태를 확인한다. 운전하는 중에도 타이어가 터졌을 때 어느 방향으로 핸들을 틀어야 할지 생각한다. 해외 생활을 하며 내가 수술을 할 정도로 아팠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도서관에 불이 나거나 침수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자주 하며 산다. 아주 어릴 적에 빙판길에서 차가 영화처럼 회전하며 낭떠러지 바로 앞 나무에 부딪혀 살아남은 뒤론 계속 최악을 생각하며 살았다.


이런 내 최악의 상황에 '국경 봉쇄'는 없었다. 전쟁이 나도 국경을 봉쇄할 거란 생각을 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21세기, 누가 국경을 봉쇄할 생각을 할 수 있나? 3월 26일에 중국이 모든 외국인들의 비자 효력을 정지시킬 거란 소식을 들었다. 그냥 헛소문이길 바라면서도 혹시 몰라 27일에 돌아가는 비행기를 알아보려고 했는데, 전석 매진이었다. 결국 27일에 영사관 채널을 통해 다음 날부터 국경이 봉쇄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언제까지라는 기별도 없는 봉쇄, 칭다오에는 메리(반려묘)가 우릴 기다리고 있고, 도서관도 4월 중순에 개관한다고 했는데, '국경 봉쇄'라니 무슨 말인가. 희대의 방역 정책 앞에 앞이 깜깜해졌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 이미 내 통제권을 떠난 문제는 단번에 '고립감'을 느끼게 해 줬다. 처음으로 살면서 죽음 외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났다.

영사관에서 발표한 국경 봉쇄 공지


코로나가 여름이면 끝날 거란 꿈같은 전망이 있었고, 내 비자는 10월까진 유효기간이 남아있었다. 목표는 6월이었다. 6월까진 버틸 수 있겠지, 입덧으로 힘들어하는 아내 앞에서 나까지 무너지면 안 되니 최대한 냉정을 찾으려고 했고, 일단 국외부재자 신고를 신청한 상태라서 투표권부터 찾을 생각을 했다. 아직 제주에서 남은 시간이 있었고, 이 황금 같은 시간을 망치기 싫었다. 국경 봉쇄라는 말도 안 되는 벽이 생겼지만, 지금으로선 아무런 방법도 생각나지 않는다. 고국에 갇혔다는 씁쓸한 생각만이 맴돈다.



투표권을 잃기 싫어서 귀국 투표를 알아보고, 선거 특집 방송 인터뷰도 하게 되었다



2020.03.28. 넘어설 수 없는 벽과 현실 사이에서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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