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강경 ‘경모네 젓갈백반’에서 마주한 어른의 밥
어릴 적 우리 집은 늘 시끌벅적했습니다.
할아버지와 부모님, 고모, 삼촌들까지
그 많은 식구들을 위해 어머니와 고모는
밥을 몇번이나 차리셨는지 모릅니다..
아침이면 전 눈 비비며 부엌 한쪽에서 아궁이에서 뜨거운 물을 퍼내 고양이 세수를 하며
옆 연탄불 아궁이에서 생선 토막이 티겨지는 소리...
곤로위에서 국이 지글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학교 갈 준비를 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차려진 온 가족의 아침 상은
조미료는 거의 쓰지 않았고,
멸치 육수에 간장을 더해 맛을 내던 반찬들,
조선간장의 짙은 향,
60년 된 식초 항아리에서 풍기던 묵직한 신냄새,
그리고 식탁 한가득 올려진 각종 젓갈들.
그 시절, 부엌에서 내 놓은 밥상은 어린 제 입맛에는
세상에서 가장 낯설고 어려운 향과 맛이 제공되는 공간이었습니다.
늘 비리고 짠 냄새에 코를 찡그리며 젓가락을 내려놓곤 했지요.
그런데 이제, 세월이 흘러 그랬던 제가 이제는
젓갈 맛집을 찾아
논산까지 내려가고 있습니다.
진한 시골 청국장과 16가지 젓갈로 한 상이 차려진
그 밥상을 맛보기 위해서....
가을 햇살이 따가운 고속도로를 지나
한가로운 국도를 따라 달리다 보면
김대건 신부 성지 건너편, 소박한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경모네 젓갈백반.’
그 이름만으로 이미 어릴적 밥 냄새가 나는 듯 합니다.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고 잠시 기다리니
상이 차려집니다.
순간, 꿀꺽— 침이 넘어가며
눈앞의 광경에 동공이 흔들립니다.
작은 그릇마다 빼곡히 담긴 젓갈과 반찬들.
오징어, 낙지, 꼴뚜기, 창란, 명란, 어리굴젓, 명태식혜까지
짠맛의 세계가 한 상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밥 위에 젓갈 한 점을 올리자
입안 가득 어릴 적 기억이 스며듭니다.
그때는 몰랐던 짠맛의 깊이,
이제는 인생 맛이 되었습니다.
청국장이 자박하게 끓고, 누룽지 냄새가 따라오자
결국 두 공기째 밥을 비웠습니다.
짠맛이 밥맛을 부르고, 밥맛이 추억을 불렀습니다.
16가지 젓갈에 밥 한 수저씩..
청국장에 또 밥을 비우다 보니
배는 이미 우험신호를....
식당을 나와 강경천을 따라 걷는데
바람 속에서 오래된 간장의 향이 희미하게 느껴졌습니다.
젓갈을 싫어하던 그 어린아이는
그 젓갈과 짠맛을 찾아 전국을 다니고 있습니다.
짠맛이란 결국, 오래된 시간의 맛이자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인것 같습니다.
텁텁하고 묘한 냄새에 미간을 찡그리며
밥 안먹을 핑계를 대던 그 어린 아이가
이젠 그때 그 밥상의 어른들과 같은 나이가 되어..
그때를 그 어른들을 그리워하며
냄새 텁텁하고 비리고 비린 그 반찬들로 밥을 비우며
그 어른들을 발 걸음을 따라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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