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 첫사랑의 결혼식

축의는 누구 이름으로 해야할까

by 우성이의 일기장

기차가 덜컹거려 잠시 잠에서 깬 뒤 청첩장을 열어 본다. 봐도 봐도 모르겠단 말이지...

과연 신부는 내가 생각하는 그 여자가 맞는 걸까?

만약 그 여자가 맞다면 삼촌에겐 잘된 일인 걸까?

청첩장을 핸드백에 넣고 식은 커피를 한번 홀짝인 뒤

'머리가 헝클어지면 안 될 텐데...'

하면서도 다시 차창에 머리를 기댄다. 방금 천안을 지났으니 적어도 30분은 더 잘 수 있을 것이다.


삼촌과 나는 어렸을 때부터 꽤 가까웠다. 나이 차 때문에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낼 수는 없었지만 자주 본 탓에 친밀감이 꽤 형성되어 있었다. 제사나 명절에 늘 집에 왔었으니 못해도 1년에 대여섯 번은 본 셈이다. 게다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아서 오며 가며 마주칠 때도 많았다.

가족끼리 자리할 때면 삼촌은 입버릇처럼

"우리 세희 내가 업어 키웠는데 언제 이렇게 컸지?"

라며 신기한 듯 말한다. 그러면 아빠는 명절 때 분유 조금 먹인 게 업어 키운 거냐며, 애 데리고 오락실에서 죽치고 앉아있던 건 기억 못 하냐며 핀잔 아닌 핀잔을 준다. 삼촌은 다과상이나 술상에서 할 말이 없을 때 주로 나의 어릴 적 이야기를 꺼내는데 이는 화제를 나에게 돌려놓고 이제 슬슬 돌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삼촌의 의중을 알아채고 소리 낮춰 '쿡쿡' 웃으면 삼촌도 민망한지 '쿡쿡' 웃곤 했다.


어렸을 때는 제사나 명절에 집이 친척들로 북적이는 게 싫었다. 엄마는 친척들 오시니 단정하게 입어야 한다며 늘 회색 치마와 흰색 면으로 된 스타킹을 신기셨는데 언젠가 엄마 몰래 그 스타킹을 학교 가는 길 어느 쓰레기 더미에 던져버렸다. 발목 상단에 있는 하트 무늬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척 중엔 항상 내게 장기자랑을 해보라며 호탕하게 웃으시던 촌수도 이름도 모르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적당히 재롱을 떨고 나면 당신의 허벅지 춤에 날 올려놓고 엉덩이를 두드리며

"누구 닮아서 이렇게 예쁩니까? 형수 닮아서 그런가 보네요. 하하하."

하고 호탕하게 웃으셨다.

재롱의 대가로 만 원짜리라도 받게 되면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밀려와 부리나케 엄마 다리에 매달렸다. 그렇게 싫어하던 할아버지의 술 냄새와 정체 모를 늙은 냄새가 이제는 왠지 그립기도 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찾아오는 친척들의 수는 반비례했다. 돌아가신 분들도 계셨고 이사를 가서 오기 힘들다는 친척들도 계셨다. 내가 고등학생이 됐을 무렵에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던 삼촌네밖에 오지 않았으며 삼촌네가 서울로 이사를 가고 난 뒤에는 삼촌만 대표 격으로 내려오는 듯했다. 하지만 아무리 삼촌이라도 매 제사마다 시간을 낼 순 없었는지 점점 내려오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래도 어찌저찌 추석과 설에는 꼭 얼굴을 비추었다. 한 손에는 정종, 다른 한 손에는 김이나 한과세트 따위를 든 채로.

엄마와 아빠가 명절마다 골프를 치러 다니게 된 것이 이때쯤이다. 옛날에야 친척들이 몇 시간씩 엉덩이를 붙이고 계셨으니 점심상에 술상에, 심지어 저녁상까지 내셨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친척들 간에 왕래가 줄어든 것은 슬픈 일이었지만 더 이상 엄마가 집안일 때문에 쓰러지듯 쪽잠을 자지 않게 된 것은 기쁜 일이었다.


이번 추석 역시 여느 해와 같았다. 부모님과 나, 그리고 삼촌 넷이 차례를 지냈고 엄마와 아빠는 골프를 치러 갔다. 엄마가 깎아놓고 나간 과일을 적당히 먹은 뒤 삼촌은 나갈 준비를 했다. 나는 문득 삼촌의 고향 방문에는 명절 이상의 뭔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로 이사 간 사람이 명절마다 이렇게 아득바득 내려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게다가 이번엔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11시간을 운전해서 왔다고 하니 도대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싶은 것이다.

"삼촌."

"왜?"

"삼촌은 명절에 왜 계속 내려와?"

"왜라니. 당연히 내려와야지."

"이제 다들 안 오니까 그렇지. 삼촌도 그냥 서울에 있어. 해외여행도 좀 가고. 요즘 시대가 어는 땐데."

사실 명절에 삼촌이 내려오는 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화장실 청소도 해야 하고 복장도 나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근데 삼촌 어디가?"

"친구 만나러."

거짓말일 것이다. 삼촌은 친구가 많은 타입의 사람이 아니다.

"알겠어. 언제 올 건데?"

"몰라? 저녁쯤? 상가에서 피자 사다 줘?"

"응. 하와이안 빼고 아무거나."

대화가 끝나고 삼촌은 화장실로 가 머리에 왁스를 덕지덕지 발랐다.

마침 남자친구와의 약속이 파투나 심심했던 나는 삼촌을 미행해보기로 결심했다. 누군가를 미행한다는, 영화에서나 보던 일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나를 꽤나 흥분시켰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쩌면 고용된 배우들이고 저기 나무 뒤에서 카메라로 날 찍고 있진 않을까?'

트루먼 쇼의 트루먼 버뱅크를 떠올리며 이런 망상도 해봤다. 동시에 죄책감이 들기도 했는데

'그래도 나쁜 일을 하려는 것은 아니니까.'

라고 자위하며 숨을 죽인 채 삼촌 뒤를 밟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의 미행은 싱겁게 끝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 일도 없었다. 삼촌은 동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곤 계속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녔다. 벤치에서 잠시 쉬거나 담배를 몇 개 태운 것 말고는 문자 그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 저녁까지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던 삼촌은 상가 피자집으로 향했다. 아마 내게 줄 피자를 사는 모양이었고 나는 그 틈에 얼른 집으로 올라왔다. 돌이켜보면 삼촌은 명절마다 늘 그래 왔는지 모른다. 항상 정장 차림으로 외출했었고 해가 지고 나서야 돌아왔다. 왜일까? 만약 걷는 게 목적이라면 편한 복장이어도 될 텐데 말이다.

잠시 후 집으로 올라온 삼촌은 내게 페퍼로니 피자를 건네주었다. 같이 먹겠느냐는 물음에 손을 두어 번 휘휘 젓고는 이내 방으로 들어갔다.

난 거실에서 피자를 먹으며 오늘 일을 곱씹어봤다.

'고향의 냄새가 너무 그리웠나? 아니면 운동부족...?'

꼬리를 무는 물음에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잡생각 따윈 명절 특선영화에 맡겨버렸다. 올해는 주성치 영화가 없는 것이 아쉽다고 생각했다.


다음 명절에나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삼촌과는 의외로 빨리 만나게 됐다.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니 뜬금없이 삼촌이 집에 와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지인 결혼식 참석으로 내려오는 김에 엄마가 늘 챙겨주었던 김치나 반찬 통들을 반납하러 왔다는 것이다.

숙소를 따로 잡을 거라는 삼촌의 말에 아빠는 호통을 치며 집에서 자고 갈 것을 강권했다. 삼촌이 바리바리 싸 온 영양제와 노화방지 화장품을 받은 엄마는 냉장고를 털다시피 해서 저녁을 차렸다. 저녁상은 자연스레 술상으로 바뀌었고 얼큰하게 취한 아빠가 안방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자리는 마무리되었다. 뒷정리를 끝낸 엄마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려고 하자 삼촌은

"제가 버리고 오겠습니다. 술도 좀 깰 겸 동네 한 바퀴 돌아볼까 해서요."

라고 말했다. 나는 순간 예전의 일이 떠올랐다. 틈만 나면 동네를 돌아다니려는 이 사람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나도 같이 가자 삼촌!"

삼촌은 당황한듯했지만 거절할 명분을 찾지 못해서인지 알겠다고 답했다.


쓰레기를 버리고 나서 삼촌을 따라 아파트 단지를 걸었다. 술기운에 살짝 달아오른 몸을 밤공기가 시원하게 감싸 기분이 산뜻해졌다. 삼촌 걸음이 생각보다 빨라 겨우 반 폭 정도를 유지하며 삼촌 뒤를 졸졸 따랐다. 우리는 아파트 단지 중앙에 있는 작은 공원을 지나 A 고등학교 쪽으로 향했다. 12년 차이가 있긴 했지만 삼촌과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삼촌은 A 고등학교 외벽 여기저기를 살펴보더니

"이쯤에 개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말이야."

하고 말했다. 개구멍을 찾지 못한 우리는 담을 넘어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학교 이곳저곳 정처 없이 떠돌던 삼촌의 발은 급식실 앞에서 멈췄다. 급식실 안은 정체 모를 조그만 초록색 빛만 깜빡거릴 뿐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삼촌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급식실 어딘가를 가만히 응시했다. 1분쯤 지났을까. 삼촌은 발걸음을 옮기며 한숨을 쉬더니

"내가 1학년 때..."

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너도 알다시피 저학년은 밥을 늦게 먹잖아. 그러니까 내가 급식실에 도착했을 때는 2학년이 밥을 먹고 있었던 거지. 근데 말이야, 급식실에 딱 들어서는데 갑자기 저 앞에서 빛이 나는 거야. 주변 시야는 점점 흐려지고 빛만이 점점 뚜렷해졌어. 나는 당황해서 몇 번이나 눈을 비벼댔지. 실제로는 1~2초 남짓의 시간이었겠지만 체감하기로는 꽤 긴 시간이었던 것 같아. 그러다가 마치 비 온 뒤 안개가 걷히는 것처럼 빛은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엔 어떤 여자 선배가 앉아 있었어. 빨간색 머리띠를 끼고 있었는데 살면서 그렇게 머리띠가 잘 어울리는 사람은 지금까지도 본 적이 없어. 그때부터 심장이 뛰기 시작하는데 심장 뛰는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다른 소리는 들리지도 않더라고. 오죽하면 심장이 튀어나올까 봐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니까?"

삼촌과 나는 운동장 레일을 따라 크게 돌기 시작했다. 몇몇 학생 커플들이 운동장 외곽에 앉아 있었다.

"밥은 넘어가지도 않고 정신은 못 차리겠고 힐끔힐끔 그 누나만 쳐다봤어. 어깨까지 내려오는 파마머리에 피부색은 어찌나 하얀지... 그러다 누나랑 눈이 딱 마주쳤는데 나 혼자만 발가벗고 있는 것처럼 수치스러운 거야.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서 얼굴을 식판에 거의 처박듯이 하고 흰 쌀밥만 씹어 삼켰어. 목이 아플 정도가 돼서야 살짝 고개를 들어보니 누난 가고 없더라고. 그게 그 누나와의 첫 만남이야. TV나 책에서 보던 첫사랑이 나한테도 찾아온 거지. 그때 느낀 감정은 게임밖에 모르던 짧은 더벅머리 소년이 감당하기에 벅찰 정도였어."

"그래서 그 누나랑 사귀었어요?"

"그런 건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어. 워낙 천사 같은 사람이라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왠지 불경스럽다고 느껴졌거든. 멀리서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어. 이따금 학교에서 스쳐 지나가기라도 하면 그날은 하루 종일 하늘을 걷는 기분이었지."

삼촌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2학기가 되고 부 활동을 정하는 날이었는데, 그때 내가 탁구부를 골랐거든?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남아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어. 축구부나 볼링부 같은 인기 있는 것들은 소위 잘나가는 친구들 몫이었으니까. 근데 놀랍게도 부 활동에서 그 누나를 만난 거야. 누나는 항상 쌍둥이 자매인 친구와 셋이서 다녔는데 역시나 부 활동도 셋이 같이 왔더라고. 대박인 건 체육 선생님이 조를 짜줬는데 누나와 쌍둥이 친구 둘, 나. 이렇게 네 명이 같은 조가 된 거야. 학교에 탁구대가 부족해서 항상 4인 1조로 복식탁구를 치게 했었거든. 그렇게 매주 토요일 부 활동마다 누나를 만날 수 있게 됐어. 우리는 탁구는 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체육선생이 사라지면 택시를 타고 대학가로 가서 놀다 오곤 했지. 아마 내가 체육선생한테 이를까 봐 나까지 데리고 다녔던 것 같아. 아직도 누나가 내 이름을 물어봐 주던 그때 기억이 생생해. 얼마나 떨리던지... 그 뒤로는 조금 친해져서 우연히 마주치면 내게 커피믹스나 사탕을 주곤 했어. 아까워서 먹진 못했고 아직까지 보관 중이야. 학년이 바뀌고 3학년은 부 활동을 하지 않으니까 더 이상 만나진 못했어. 학교에서 마주치는 일도 거의 없었던 것 같아. 수능 준비 때문에 이래저래 바쁘셨겠지."

"그러면 그렇게 끝난 거예요? 아무것도 없이?"

"뭐 그런 셈이지. 졸업식 날 주려고 편지를 쓰긴 했는데 결국 못 줬어. 그날 쓴 편지를 찢어 버리면서 혼자 다짐했어. 성공해서 꼭 누나 앞에 나타나겠다고. 그런데 아직까지 성공을 못 해서 그 다짐을 못 지키고 있지. 사실 넌 모르겠지만 명절마다 고향에 내려오면 아파트 단지를 뺑뺑 돌곤 했어. 그 누나도 이 단지에 살았으니 혹시나 마주치진 않을까 해서."

드디어 비밀이 풀린 순간이다. 역시 명절마다 부산까지 내려오는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혹시 이사 가진 않았을까요? 시간이 꽤 흘렀는데."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걸 굳이 확인하고 싶진 않았어. 작은 희망이라도 남겨놓고 싶은 마음이랄까? SNS 계정도 알려면 알 수는 있지만 굳이 찾아보진 않았어. 뭐랄까... 누나에 대한 건 그게 뭐든 알게 되고 싶지 않은 느낌? 남자친구는 있는지, 어떤 과일을 좋아하는지, 얼굴은 어떻게 변했는지 같은 것들 말이야. 내가 성공해서 누나와 만나게 되면, 그때 내 스스로 알아보고 싶었거든. 근데 한 달 전에 우연히 동창에게서 그 누나 결혼 소식을 듣게 된 거야."

"혹시 내일이 그 누나 결혼식이에요?"

"응."

"따로 청첩장 받거나 한 건 아니구요?"

"청첩장은 무슨. 그 누나 인생에서 나는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질 텐데."

"청첩장 없이 가도 되는 건가?"

"난장 칠 것도 아니고 축하해 주러 가는 건데 뭐 어때. 그리고 굳이 따져보면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탁구 복식팀까지 했던 사인데. 나름의 연은 있는 셈이지."

슬쩍 쳐다본 삼촌은 어른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냥 마지막으로 최고로 예쁠 첫사랑을 눈에 담고 싶을 뿐이야."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삼촌은 이미 결혼식 갈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뭔가 멋진 정장차림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캐주얼한 복장이었다. 나는 갑자기 결혼식장에 따라가고 싶어졌다. 한 사람 뇌리에 이토록 오래 박혀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삼촌은 나한테는 더 숨길 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따라와도 상관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물론 엄마에겐 거길 왜 가냐며 10분이 넘게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생애 처음으로 누군가의 결혼식에 가보는 거라 복장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까까지 잔소리를 늘어놓던 엄마의 도움으로 나름 그럴듯하게 준비를 마쳤다.

삼촌의 옷을 보고

"우성아, 결혼식에는 단정하게 가야 한다."

하는 아빠의 당연한 말을 배웅삼아 삼촌과 나는 집을 나섰다. 삼촌은 차에 타자마자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마스크를 쓰며

"이렇게 하고 가면 누군지 못 알아보겠지?"

물었다. 삼촌은 혹시 자신을 알아볼 동창이나 선배들을 의식하는 듯했다.


삼촌은 운전하는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가끔씩 적막을 깨는 내비게이션 안내 소리가 들려왔는데 일반 AI 목소리가 아니라 유명 유튜버의 목소리라서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다. 차 뒷좌석에는 멀끔한 정장이 걸려있었다. 삼촌은 여차하면 정장을 입을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축의는 누구 이름으로 해야 할까?"

긴 적막을 깨고 삼촌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냥 삼촌 이름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요?"

질문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아 당연한 대답으로 응수했다.

"그건 좀 그렇지 않나?"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 이후로 본 적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결혼식장에 나타나 축의금을 내는 건 충분히 이상할 만했다. 더 최악인 건 '이 사람 누구지?' 하는 신부의 반응일 것이다.

"뭔가 누나 기억에 남을 만한 이름이면 좋겠는데. 예를 들면 대통령 이름이라든지..."

삼촌은 이렇게라도 해서 그 누나 기억 속 책장 어딘가에 자리 잡고 싶은 것 같았다.

"대통령 이름 괜찮은 것 같은데요?"

"너무 장난처럼 보이려나."

"아니면 제갈탄이나 탁정민같이 특이한 성은 어때요?"

"뭔가 흔하면서도 기억에 남을 만한 이름 없을까?"

흔하면서도 기억에 남는 것. 그런 건 세상에 없다.

"그러면 신랑이나 신부이름은 어때요? 왜 자기 이름이 흔한 것 같아도 찾아보면 은근히 없잖아요. 게다가 결혼식 올만큼 친한 사람 중에는 더 없을 테고."

"그럴듯한데? 그래도 왠지 신랑 이름으로 축의 하기는 싫어."

"그럼 신부이름은 어때요? 그 누나 이름 뭔데요?"

"김현진."

"음... 적당히 중성적이라 괜찮을 것 같은데요?"

삼촌은 깊은숨을 코로 내뱉더니 검지손가락으로 핸들을 탁탁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리에 맞춰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백화점 건물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삼촌과 나는 별관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근데 결혼식은 몇 시예요?"

"11시 30분."

"20분 지났는데요 삼촌?"

"일부러 늦게 온 거야. 조용히 보고 조용히 나오려고."

축의 할 때 쓸 이름은 정했느냐고 물어보려다가 너무 긴장한 것 같아 물어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곧바로 결혼식장이었다. 고풍스러운 카펫을 따라 길이 나 있었고 벽과 천장은 화려하고 따뜻한 조명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삼촌은 뚜벅뚜벅 축의금 데스크로 걸어갔다. 데스크에 도착한 삼촌은 외투 안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고 놓여 있던 네임펜을 집어 들었다. 뚜껑을 열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삼촌은 명부와 축의봉투에 신부이름, 그러니까 ‘김현진’이라고 적었다.

"식권은 두 장 드리면 될까요?"

"식권은 괜찮습니다."

"차는 가지고 오셨을까요?"

"네."

삼촌은 식권은 받지 않고 주차권만을 받아 들고 식장으로 향했다. 삼촌이 무려 16년 만에 첫사랑을 다시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삼촌은 모자를 벗었다가 고쳐 쓰며 모자챙을 최대한 밑으로 눌렀다. 왠지 모르게 나까지 긴장돼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식장에 들어갔을 때는 막 축가가 시작된 시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발라드 가수의 노래여서 괜스레 반가웠다. 신부는 이미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 듯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하얀 피부에 그리 길지 않은 머리. 동그란 눈은 크고 예뻤다. 적당히 차오른 볼살은 잡아당기면 이만큼이고 늘어날 것만 같았다. 삼촌의 그녀는 전형적인 미녀상은 아니었지만 누구에게나 호감을 살만한 얼굴이었다. 신부 얼굴을 대충 훑어본 나는 신랑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짧게 친 옆머리는 마치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돋아나 있었고 화장으로도 가릴 수 없을 만큼 피부상태는 좋지 않았다. 코는 기계가 누른 것처럼 움푹 들어가 있었고 묘하게 큰 콧구멍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키는 신부보다 한 뼘 정도 작았는데 보통 키높이 구두를 신지 않나? 아니면 신은 게 저 정도인 건가? 아무튼 둘의 모습은 뭔가 조화롭지가 않았다. 한마디로 어울리지 않았다. 누가 잘생기고 예쁘고 못나고를 떠나서 그냥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허름한 뒷고기 집에서 최고급 와인을 마시는 느낌이랄까. 외모만 보면 삼촌이 조금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지만 뭐 사실 이쪽도 대단히 뛰어난 건 아니다.

"세희야, 가자."

삼촌은 내 옷을 살짝 잡아끌고는 휙 하고 돌아서 식장 밖으로 걸어갔다. 축하해 주러 온 삼촌은 분명 다른 감정에 휩싸인 것 같았다. 축하고 내려간 삼촌의 어깨는 어느 부정적 단어와도 높이가 맞아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알 것도 같았지만 이제 와선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삼촌과 내가 식장을 나가는 것이 무슨 신호라도 된 듯, 마침 축가가 끝나고 관객들의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괜스레 이 상황이 불편해져서 삼촌에게 백화점 구경 좀 하다가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데려다주겠다는 삼촌을 뒤로한 채 여성관 한 바퀴를 돈 뒤 집으로 돌아왔고 삼촌은 그날 이후로 명절에 내려오지 않았다.

삼촌 소식을 듣게 된 건 그로부터 4년 후 여름이다. 퇴근하고 돌아온 내게 엄마는 삼촌의 결혼소식을 알렸다. 하필 그날 당신들은 해외여행 스케줄이 있어 내가 우리 집 대표로 결혼식에 참석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홀로 서울까지 갈 생각에 순간 짜증이 나 엄마에게 건네받은 청첩장을 책상 언저리 어딘가에 무심히 던져두었다.


해외로 떠나면서 엄마가 갈아놓고 간 토마토 주스로 아침배를 채우고 자기 전 미리 골라둔 블라우스와 길게 떨어지는 베이지색 치마를 입었다. 항상 이런 날은 머리가 말썽이다. 어떻게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아 대충 핀을 꼽아 단정하게 했다. 아빠에게 받은 축의봉투와 책 사이에 깔려 조금은 구겨진 청첩장을 백에 넣고 집을 나섰다.

발차시간까지는 꽤 여유가 있어 역 근처 도넛 가게에 들렀다. 도넛을 몇 개 고르려다가 의외로 포만감이 있어 커피만 한 잔 사서 나왔다. 결혼이라. 하긴 삼촌 나이면 진작에 아이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좌석에 앉아 가만 생각해 보니 청첩장을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다. 그래도 결혼식에 가는 거면 적어도 신부 얼굴은 알아둬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앞 좌석에 달려 있는 간이테이블을 내려 커피를 잠시 올려놓고 가방에서 청첩장을 꺼냈다. 모서리가 구겨진 청첩장을 보니 삼촌에게 조금 미안했다. 청첩장 속 신부가 생각보다 예뻐서 조금 놀랐다. 삼촌도 꾸며놓으니 생각보단 괜찮았다. 옷이 날개라더니 그 말이 딱이었다. 둘은 잘 어울렸다. 신랑과 신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그런데 신부의 이름이 조금 이상했다. 아니, 이상하다기보다는 기시감이 들었다.

아!

이 이름은 4년 전 삼촌 첫사랑 결혼식에 따라갔을 때 본 적이 있다. 삼촌이 명부에 적어 넣었던, 바로 그 이름이었다. 당시 나는 삼촌이 정말로 대통령 이름을 적을 것인가 궁금해서 유심히 관찰했기 때문에 또렷이 기억이 난다. 이 이름은 분명 그때 그 신부의 이름이 확실했다. 그러면 지금 삼촌과 결혼하는 사람은 그때 그 첫사랑인 건가? 나는 마치 탐정이라도 된 듯 추리를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도무지 삼촌 첫사랑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어이없는 건 고슴도치 머리를 하고 있던, 그때 그 신랑의 얼굴만은 어제 본 것처럼 선명하다는 점이었다.


정리해 보면, 삼촌의 첫사랑은 모종의 이유로 이혼했고 삼촌과 재혼을 하게 됐다는 건가? 아니면 삼촌은 첫사랑과 이름만 같은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는 것인가? 흥미로웠다. 당장에라도 삼촌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어차피 나중에 직접 만나서 삼촌에게 물어보면 알게 될 일이니 급하지 않기로 한다.

청첩장을 정성스레 접고 차창에 머리를 잠시 기댔다. 왠지 지금 꿈을 꾸게 되면 4년 전 그때의 결혼식장으로 돌아가 신부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기차의 진동이 고스란히 창문으로 전해졌기에 머리도 따라 덜덜덜 떨렸지만 아침 일찍 일어난 탓에 피곤했던 건지 이내 눈이 스르륵 감겼다.

'머리가 헝클어지면 안 될 텐데...'

하는 걱정과 함께 나는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