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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Aug 05. 2023

덕질하기 딱 좋은 나이

어리지 않아서 더 좋아!

'덕질'이라는 용어 자체에 이유 없는 거부감이 들 때도 있었다. 직업이나 직책을 비하하는 의미를 더하는 접미사 '~질'이 붙은 까닭이리라.

'갑질', '도둑질', '정치질'등등처럼 '덕질'도 부정적인 느낌의 단어였고, 그 때문에 덕질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조금의 편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 덕질이란 것을, 그것도 연예인 덕질이라는 것을 나도 하고 있다.

덕질, 어감상으로, 문맥상으로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있고, 그래서 요즘 그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지만,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한번 찾아볼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불현듯 그 정확한 의미를 알고 싶어졌다.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 덕질의 사전적 의미이다.

그렇다. 나는 이찬원이라는 분야를 좋아하고, 그와 관련된 것들을 파고드는 중이다.

덕질이라는 것을 내가 하고 보니, 부정적인 편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었고, 여느 취미활동과도 크게 간극이 있지도 않은 것이었다.


취미활동이라는 것이 시간적, 경제적, 정서적 여유가 있을 때 더 편히 즐기고 누릴 수 있는 것이라면, 덕질도 취미 활동의 범주에 들어갈 충분한 요건을 갖췄으니 위와 같은 요건일 때 더 잘할 수 있는 것이 덕질이지 않을까?


아이돌 가수의 전유물처럼 여겼던 팬덤 문화가 트로트 가수에게도 생겼다. 그 팬덤의 대다수가 5,60대, 그 이상의 연령층이다. 아이돌 가수의 어린 팬들 못지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열정적인 '팬질'을 그들은 하고 있다.


그들은 육아에서 자유로워졌고, 열심히 산 젊은 시절의 보상으로 경제적인 여유를 가졌고, 갱년기를 겪으면서 감성도 풍부해졌다. 시간적, 경제적, 정서적 여유가 생긴 그들은 누구보다 취미활동에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여러 요건을 갖추었다.


나는 50대이다. 60대를 향해서 가고 있다. 딸들은 내 손이 더 이상 필요 없는 나이가 되었고, 전업주부 30년 가까운 시간을 충실히 보낸 여유 있는 주머니를 가졌고. 다시 사춘기가 온 듯이 웃음도 눈물도 많아졌고, 그때처럼 감수성이 풍부해졌다.

덕질하기 딱 좋은 여러 조건을 갖추었다.


치열하게 자녀를 키워낸 저력이 있고, 이제는 나를 위해서도 돈을 아끼지 않아도 되고, 갱년기를 지나면서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덕질하기 딱 좋은 나이이다.


거기에 덧붙여서 20대에 컴퓨터를 처음 접했던 세대인 나는 덕질에 필요한 인터넷상의 각종 응원법도 쉽게 배울 수 있고, 딸을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신조어나 덕질용어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고, 혼자서도 콘서트 관람을 위해 전국 어디라도 갈 수 있는 체력이 있다. 젊은 시절에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산 엄마와 아내의 취미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가족이 있다.

덕질하기 딱 좋은 나이이다.


가수 이찬원을 너무 좋아하는 중년, 노년의 팬들 중에는 자신이 좀 더 젊었으면, 좀 더 어렸으면 좋았겠다며 아쉬워하시는 분들이 더러, 아니 많이 있다.

모르는 말씀이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덕질이 즐거울 수 있었을까? 지금처럼 열정적인 덕후가 되었을까? 지금처럼 이모, 고모, 엄마, 할머니의 마음으로 어린 가수를 품을 수 있었을까? 가족들의 눈치를 안 보고 내 즐거운 취미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었을까?


지금 우리는 덕질하기 딱 좋은 나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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