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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해바라기

by 노랑코끼리 이정아

땅에 닿을 듯이 한없이 굽은 등은

비쩍 마른 몸이 지탱하기에 위태로이 버겁고,


얼룩얼룩 검버섯 앉은 늙은 얼굴은

덩그러니 가는 목이 힘겹게 받들고,


푸석푸석 숱 적은 머리카락은

엉겨 붙어 덕지덕지 볼품이 없고,


찢기고 얼룩진 남루한 옷은

벗는 편이 나았다.


꼿꼿이 선 건강한 척추는,

고개를 빳빳이 쳐든 빛난 얼굴은,

윤기 나는 숱 많은 고급진 금발은,

겹겹이 나풀대며 반짝이는 녹색 드레스는


단지, 지나간 과거의 영광이었다.


누구나 가는 길, 마지막까지 당당하리라고,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이라면

의연히 받아들이리라고,

끝끝내 힘을 놓지 않는다.


열정으로 불태운 화려했던 젊음은

늙은 노파의 초췌한 얼굴에 작은 희망으로만 박혔다.

누구보다 많은 생명을 품었다.


최선을 다한 일생이 자랑스럽다.

몸은 늙고 병들어 흙으로 돌아갈 테지만

다시 필 영광을 포기하지 않았다.


늙은 희망은 새 날을 꿈꾼다.

다시 하늘을 우르를 후손들의 그날을.




황금빛 눈부셨던 커다란 꽃은 어느새 고개를 들지 못한다. 빽빽했던 노란 꽃잎도 얼기설기 몇 가닥 남지 않았고, 초록의 큰 이파리들도 마르기 시작했다. 다시는 해를 향해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노쇠해 버렸다.

한여름의 당당했던 아름다움은 온데간데없고, 초췌해진 모습으로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다.

고개를 들어 올려서 자세히 보면 생명을 품은 새까만 씨앗이 열심히 산 일생을 보여준다. 내년 봄에 다시 피리라는 희망을 말한다.


요양원 실습을 하고 온 날, 대문밖에 구부리고 있는 해바라기를 보면서 식물도, 사람도 마지막은 초라해지지만, 자기만 아는 인생의 보람 하나쯤은 누구나 안고 간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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