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코끼리 이정아 Sep 27. 2022

덕질이 바꾼 나의 색깔 취향

핑크가 좋아졌다.


연예인 덕질이라는 것이 단순히 재미있는 취미생활 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내 일상의 변화뿐만 아니라 취향까지 바뀌 있다.


이찬원의 공식 팬덤 색깔은 '로즈골드'이다. 아이돌 가수들이나 기존 트로트 가수들의 팬덤 색과 겹치지 않는 선에서 팬들이 심사숙고해서 투표로 결정한 색깔이다.

'로즈골드'라고 하면 언뜻 어떤 색인가 싶지만 인디언 핑크, 연핑크 정도의 컬러라고 보면 된다.


이찬원의 팬들은 콘서트나 지자체 행사 때 그 로즈골드, 연핑크 옷을 입고 '나는 이찬원 팬이다'를 몸으로 표현하곤 한다.  역시 콘서트에 갈 때는 굿즈로 나온 연핑크색 후드티를 입거나, 비슷한 색의 원피스나 블라우스, 셔츠를 챙겨 입는다.


그런데 그 핑크색이란 것이 50여 년 평생에 내가 입겠다고 사 본 이 없다. 입어 본 기억이 없다. 그러니 굿즈 티를 집에서부터 입고 나가는 게 무척이나 불편했었다. 그래서 핑크 옷은 가방에 넣어가서 콘서트장 근처에서 갈아입곤 했었다.


그랬던 내가 요즘은 자꾸 연핑크색에 눈이 가고, 손이 간다. 마음이 간다는 이야기이다.

베이지, 브라운, 블랙이 주였던 내 옷장의 옷들 사이에 핑크색이 군데군데 섞이기 시작했다.

옷뿐만이 아니다. 가방이며, 스카프도 핑크색이 생겼다. 실내 슬리프를 사려고 다이소에 갔다가 예전에는 쳐다보지도 않았을 핑크색에 나도 모르게 손이 가고, 내 약통도, 손선풍기도 핑크색이라는 사실을 알고 '내가 왜 그랬지?'라며 기겁을 했던 적도 있다.


도쿄에 사는 친구가 백화점에 왔다면서 엔화 환율이 너무 좋으니까 핸드백을 대신 사다 주겠노라며 사진에서 고르라고 했다. 검은색이나 베이지색을 고르는 것이 당연했던 내 눈에 핑크색이 너무 예뻐 보였다. 내 눈에 예쁜 걸 사야 되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예쁜 핑크색을 사달라고 부탁을 하면서도 내 취향이 언제부터 이렇게 바뀐 것인지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연예인 덕질이 55년 동안 굳어있던, 콘크리트보다 더 단단했던 나의 색깔 취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핑크색을 좋아하는 큰딸의 취향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던 엄마는 쉰 중반을 넘기면서 딸보다 더 많은 핑크 아이템들을 자꾸 집에 들이고 있다.


색깔이라는 것이 심리 상태를 어느 정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차분하고, 어두운 색만 고집하던 내가 발랄하고, 밝은 분홍색을 입고, 들고, 사용하다 보니 내 마음도 분홍분홍으로 물들고 있는 것만 같다. 칙칙했던 내 인생에 이찬원이라는 귀여운 가수가 개입되면서 핑크 핑크 한 이 되고 있다. 어떤 면이 그런지 딱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느끼는 요즘의 내 시간들은 그저 분홍 같고, 핑크스럽다.


귀여워서, 착해서, 재능이 많아서, 노래를 잘해서, 음색이 내 취향이어서 팬이 되었다. 그런데 그 가수 이찬원은 나의 색깔 취향을 바꾸어 놓더니 내 마음도 핑크 핑크 하게 환하게 자꾸 바꾸고 있다. 덕질의 순기능이 분명하다.

이찬원 덕질을 안 했다면 평생 이렇게 예쁜 핑크색을 한 번도 안 입고, 안 가져보고 살았을 것이 분명하다. 얼마나 억울할 뻔했는가 말이다.


낡은 잠옷을 버리고 새 잠옷을 사려고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던 나는 자연스럽게 핑크 계열로 눈길이 간다. 핑크 잠옷이라니, 말이 되는가 말이다.








이전 11화 평생 처음 써 보는 언어가 생겼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