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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Apr 23. 2023

내 덕질의 조력자이자 가정의 평화유지군

의구심과 지지의 그 중간 어디쯤


아내가 엄마가 평생 안 하던 짓을 시작하면서 어리둥절해하던 남편과 두 딸은 내 덕질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하루이틀 하고 말 것 같지 않은 의 이찬원 덕질은 가족들에게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 내 덕질은 나의 일상인 동시에 우리 가족의 일상이 되었다.


이찬원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티브이 리모컨은 당연하다는 듯이 남편 손에서 내 손으로 건네지고, 틈만 나면 엄마 입에서 나오는 이찬원 이야기를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들어주는 딸들이 되었다.

'편스토랑'에서 이찬원이 우승을  다음날은 편의점 삼각김밥이나 도시락, 컵밥, 햄버거를 먹는 일이 당연하고, 잘 먹고 있던 건강보조식품이 이찬원이 광고하는 제품으로 바뀌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싶었던 가족들은 '저러다 말겠지' 생각했던 나의 이찬원 덕질이 3년 넘게 한결같고 보니, 덕질 인정을 넘어서 이제는 내 덕질의 조력자가 되고 있다.

남편은 지방 행사나 콘서트에 데려다주는 운전기사 역할을, 한때 아이돌 덕질 좀 해 본 큰딸은 콘서트 티켓팅 전담자, 관심 없다며 신경 안 쓰는 척하는 작은딸은 이찬원과 관련된 것만 눈에 띄면 무심히 엄마에게 건넨다.


여행이라는 명목으로 부산, 전주, 문경, 평창 전국 콘서트와 축제에 운전을 해서 남편이 같이 가주고, 이찬원 콘서트가 시작되면 회사에서 일하다가도 만사 제쳐두고 티켓팅 전쟁에 큰딸이 참전을 해주고, 지하철역이나 식당에 이찬원 광고나 사인이 보이면 어김없이 사진을 찍어서 보내고, 편의점에 이찬원 얼굴이 붙은 상품이 눈에 띄면 사들고 오는 작은딸이.


내가 강요한 적은 없지만 가족 모두 아내와 엄마의 이찬원 덕질에 훌륭한 조력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남편도, 딸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의 행복이 가정의 평화를 가져오고, 엄마의 관심이 다른 곳에 가 있어야 자기들이 편하다는 것을.


"오늘은 이찬원 안 나오나?" 티브이 리모컨을 만지작 거리며 남편이 묻고, "좋은 자리 못 구했어!" 큰딸이 미안해하고, "이찬원 햄버거 그쪽 편의점에는 한 개 있더라" 운동 다녀오는 작은딸 손에 들린 햄버거 봉지에 귀여운 이찬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


우리 가족은 4년째 가정의 평화유지군 역할을 묵묵히 수행 중이고, 덕분에 내 덕질의 나라는 평화롭기만 하다.


"이사 가면 정수기도 바꾸고, 비데도 설치해야 할 것 같아" 내 말에 가족 누구도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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