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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Jan 08. 2023

누군가 나에 대해 쓴 글을 본다는 건

반존대와 첫인상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그가 보내온 단편의 글은 언젠가 썼던 일기의 단편이었다. 보기 전부터 신났다. 그의 글은 꽤 재밌다. 아니, 누구라도 자신에 대해 쓰여진 글을 보면 재밌을 것이다. 그게 긍정이든 부정이든, 사람은 자기 자신이 가장 흥미로운 법. 무엇보다 흥미로운건, 절대 내가 읽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쓴 글이라는 것. 나의 감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아주아주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만나는 건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다. 


부끄럽게도 나의 첫인상은 '반존대'에서 시작됐다. 나는 자각하지 못하는 편인데, 나도 모르게 (여전히 잘 인지하지 못하는) 반존대를 할 때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아니, 이건 이러니까.. 이런거 아닐까요?" 라고 말하면, 앞에 '아니' 라는 말이 반말이라는 걸 나는 최근에 알았다. 내게 저기서 쓰이는 '아니'는 '아니야' 라는 뜻이라기 보다 '아-,' '오오' 같은 일종에 추임새에 가까웠다. 뭔가 새로운걸 알았을때 쓰는 아-! 나, 으음- 같은 그런 추임새 말이다. 


스스로는 전혀, 정말 단 하나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고, 심지어 나는 꽤 많이 높여쓰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처음 반존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조금 충격이었다. 이런것도 반말이라니! 이런 무의식의 반존대는 특히 젊은 여성에게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일기에는 "젊은 여자 특유의 반존대가 들렸다"고 표현되어 있었다. 



사실 처음 이 회사에 입사하고 놀랍고 재밌었던 점 중 하나는 회사 메신저였다. 사내메신저를 쓰는 건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이곳에 사내메신저는 정말, 정-말! 사무적이었다. 본래 메신저라는건 메일보다 조금 덜 포멀하고, 격식 차리지 않고, 친근감이 있는 그런 어플이 아니던가! 하지만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 이곳의 메신저는 꼭 메일이나 회의록 같은 느낌이었다. 맞춤법을 다 지켜서 온점반점 다 찍어서 아주 간략하게 본론과 요점만 이야기했다. 무언가 내용을 보고하면 (심지어 내가 전혀 상관없는 농담이나 실없는 이야기를 할 때도) 부장님은 (특히 부장님은) 늘 '네.'라는 한글자로 답하셨다. 


그게 사실 내게는 너무너무 재밌었다. 뭐랄까, 내가 길게길게 농담을 늘어놓아도 '네'라는 답변이 오니 웃음이 났다. 민망해서인지 어이가 없는건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는데, 결국 '한결 같아서' 였던 것 같다. 뭐랄까. 정말 한결같은 분이라 어떤 악의도 없이 정말 '네.'라고 대답해주신걸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가끔 '수고했어요' 한마디가 붙으면 뭔가 굉장히 기뻤다. 나, 조련된건가..?



아무튼 그런 곳에서 나의 메신저는 반존대 만큼이나 눈에 띄었다. 나는 정말 개인 메신저를 하듯이 사내 메신저를 썼다. 업무 보고를 할 때도 있었지만, 내용 보다는 느낌이 그랬다. 물결을 넣는다거나, 메신저를 넣는다거나 'ㅎㅎ'나 'ㅋㅋ'같은 초성만 쓴다거나. 정말 '나만' 그렇게 썼지만 특별히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도 온지 얼마 안된, 그래도 팀에서는 막내 직원이라 그런 것 같다. 나중에 듣기로는 부장님이 상사를 불러 내가 쓴 메신저를 보여주며 말씀하셨다고 한다.


"요즘 애들은 메신저를 이렇게 하나? 신선하고 좋네."


여전히 내게는 '네.'밖에 보내지 않으셨지만. 



아무튼 그렇게 반존대로 나의 존재를 인식한 그는 또래였던 나를 보고 이런 저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를 처음 봤을 때의 묘사도 함께 적혀 있었는데, 그 부분이 특히 재밌었다. 나는 거울이나 사진으로밖에 나를 볼 수 없으니, 남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나를 볼 수 있는건 아마도 그렇게 소설속 등장인물 처럼 누군가에 의해 내가 묘사되었을 때 뿐일테니까. 아, 물론 다른 직원들에 대한 묘사도 있었다. 읽다보면 정말 그가 느낀 첫인상과 내가 생각이 너무 상이할때가 있어, '아니에요. 그런 사람 아닙니다.. 으..! 말해주고 싶다!'고 느끼는 대목도 있었다. 물론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모른채 좋은 느낌으로 계속 간직하시는 편이 좋겠다 싶어서.


얼마전 친구들에게서 '얘도 네가 ENFP같데' 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둘이 같이 어딘가 놀러간 모양이었다. 나는 ISF(가끔T)J다. 어쩜 하나 빼고 다 다를까. 친구들은 절대 그럴리 없다며 말했다. 


"ISFJ가 되고 싶은 ENFP아니야?"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내가 상이할 경우 어느쪽이 맞는 걸까? 결론은 '모두 맞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평소에 내가 보는 나는 ISFJ가 맞고, 아마도 그렇게 살고 있겠지만,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할 때의 나는 ENFP가 되는 모양이다. 사람은 어울리는 대상에 따라 아주 다양한 성격과 모습이 되니까. 어느쪽도 내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호주에서 막 돌아왔을 때의 나는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과는 다른 MBTI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서 살고 일년 정도가 지난 후부터 저 성향이 계속 나오지 시작했고, 지금은 T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공감하고 싶은 대상이 없는 탓이다.


우리는 결국 내가 한국을 방문하는날 셋이서 다같이 세명 각각의 MBTI테스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다수결로 나온 MBTI를 수긍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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