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다 오세요.

첫 해외 출장

by 작은 꿀벌

입사 초기에 나는 꽤 자주 짧은 해외 출장을 다녔다. 유럽을 둘러보고 싶은 나의 욕구와 마찬가지로 이왕 유럽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여기저기 둘러보라는 윗선의 배려로,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하기 전 처음 반년 동안 열심히 출장을 다녔다.

처음 간 출장지는 법인의 관할 국가이자 라트비아에 인접해 있는 국가인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였다. 법인의 거점지인 라트비아는 비록 인구도 적고 크기도 작았지만, 위로 에스토니아, 아래로 리투아니아 사이에 있는 발트해 교통의 요지였다. 북·동유럽과도 근접해 있어 여행객들의 주요 경유지이기도 했다.

출장의 명분은 관할국 지사를 둘러보는 것과 본사 정책에 따라 변경된 KPI 규정을 설명한다는 명분이었다. 당시에 입사한 지 겨우 석 달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지만, 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주어진 '다 생각하고 뽑은 거야'에 포함된 업무 중 하나였다.


그날 아침, 오전 일곱 시경의 비행일정을 위해 우리는 공항에 모였다. 출장 인원은 부장님과 옆 팀 과장님,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으로, 아침에 에스토니아로 출발해 오피스에 들른 뒤, 그날 저녁 리투아니아로 이동해 다음날 라트비아로 돌아오는 일박 이일의 짧은 여정이었다.


왜 옆 팀 과장님과 함께 가게 되었는가 얘기하자면, 내가 입사한 후 두 달쯤 되었을 때 '소시지랑 풍차 중에 뭐가 좋으시냐'라고 농담을 하던 우리 팀 과장님이 퇴사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나는 낙동강 오리알이 된 듯한 기분으로 앞날이 막막했지만, 과로로 병을 얻어 퇴사를 결심하신 분을 원망할 수는 없었다.


e-ticket을 찍고 짐검사를 마친 후, 게이트 앞에 있는 카페에서 다 같이 커피를 마셨다. '카페인'이라는 체인점이었는데, 처음에는 캐러멜 라테를 시켰는데 약간 인위적인 향이 났다. 시럽 때문인가 싶어 이후에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라테를 시켰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그 후 다른 지점은 나을까 싶어 몇 번 시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쓰는 원두나 우유가 특이한 모양이다.


에스토니아는 담당하는 관할 삼국 중 가장 작은 나라였다. 인구수도 적고, 그만큼 매출도 적었다. 오피스 인원도 가장 적어서, 담당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두어 시간 미팅으로 일정이 모두 끝났다.

사무실을 나와 부장님의 추천으로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미슐랭에서 별을 받은 레스토랑이라고 했는데, 과연 모든 코스와 메뉴가 세 명 동시에 서빙되었다. 한 사람이 여러 개를 들고 와 하나씩 나르지 않고, 세 사람이 각각 하나의 디쉬를 동시에 서빙하는 식이다. 음식의 온도 때문인지, 유달리 비싼 가격 때문인지 이후에 방문했던 몇 점의 파인 레스토랑에서도 같은 서비스를 받았다.


"자 그럼 밥도 먹었으니, 남은 시간은 천천히 시내 구경하다가 다섯 시쯤 광장에서 만납시다."

"네? 그래도 괜찮은가요?"


나는 놀라서 물었다. 아직 네 시간이나 남은 데다, 어차피 평소에서 VPN을 연결해 어디서든 업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에스토니아 오피스로 돌아가 회의실에서 평소처럼 일을 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어디 카페나 들어가서 일해야겠지. 둘은 가서 놀다 오세요. 원래 이럴 때 한 번씩 구경도 하고 그러는 겁니다. 나 사원 때 부장님이 그러셨거든."


아니 이럴 수가. 이게 바로 출장의 묘미인가!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는 당장 시내로 놀러 나갔다. 우선 로컬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관광지를 검색했다. 갑자기 흑백처럼 보이던 도시가 색채를 띄고, 더운 날씨가 마냥 화창하게 느껴졌다. 커다란 요새 같은 성채를 구경하고, 여행 온 노부부의 사진을 찍어주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길드(Guild)라고 쓰인, 게임에 나올 것 같은 좁은 통로로 들어가 MMO RPG 게임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내며 보냈다.


이 기억은 내게 퍽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오래전 좋았던 일을 기억하고 똑같이 베푸는 것이, 생각보다 꽤 어렵다는 것을 안다. 언젠가 내게도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도 그때의 부장님처럼 좋은 기억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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