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정말 동화였구나.

향락의 도시 암스테르담

by 작은 꿀벌

튤립이 가득한 들판에 느리게 돌아가는 커다란 풍차. 파란 하늘 아래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언제 어느 시대부터 똑같은 풍경을 바라봤을까 생각하는 그런 곳. 서정적인 풍경이 그려지는 동화 같은 마을. 내가 가지고 있던 네덜란드의 모습이다.


팔월의 주말, 공항은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해 자칫 잘못하면 길을 잃을 것 같았다. 파리의 샤를 드골 (Charles de Gaulle) 공항이 너무 커다란 공간에 끝없이 펼쳐진 게이트에서 미로 찾기를 하는 기분이라면,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Schiphol) 공항은 커다란 광장에 온갖 목적지를 가진 사람들이 정신없이 갈 길을 가는 모양이다. 그 인파에 밀려 밖으로 벗어나면 어느새 가려던 길을 벗어나 있을 것만 같다.


커다란 광장을 지나 택시 승강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땀범벅으로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새까만 택시들이 주욱 줄지어 있었는데, 모두 커다란 테슬라 세단이었다. 전기차도 테슬라도 처음이라 숙소로 가는 길 내내 우주선 같은 내부를 구경하며 마음속으로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와 차 진짜 좋다. 테슬라 처음 타봐! 하고 주절주절 떠들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혹시나 만만하고 하찮은 동양인 여자애로 보일까 싶어 마음으로만 삼켰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보나 마나 얘가 나보다 돈도 많고 집도 잘 살겠지만) 괜히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가장 그런 느낌을 자아내는 요소는 그래, 지금 내게 어떤 일이 생겨도 연락할 사람이 없다는 것일 테다. 라트비아에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한 들, 어찌 제시간에 나를 구해내겠는가.


숙소는 스키폴 공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호텔이었다. 듣기로는 이번 트레이닝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과반수가 이 호텔에 머물고 있다고. 호텔은 대로변 바로 옆에 위치해 차 없이 돌아다니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예약할 적에는 공항 근처에 위치한 연수장과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고속도로를 한번 타고 들어와야 하니 일단 숙소에 들어오면 나가기는 쉽지 않겠다.



조식을 먹고 회사에 도착하자, 리셉션이 카드를 주며 위층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별말이 없어 두리번거리며 회장을 산책했다. 저쪽에 외국인 무리가 앉아 있어 다가가 말을 걸었다. 다른 법인에서 온 참가자인 듯 했다. 생각보다 한국인은 없는 모양. 다들 소시지를 선택한 걸까. 연수가 시작할 즈음에야 한국인 대여섯 명을 볼 수 있었는데, 자유분방하고 예술을 할 것 같은 A군, 까무잡잡하고 다소 고지식한 느낌의 B군, 어디선가 본 듯한 친숙한 인상을 가진 사람 좋아 보이는 C군, 그리고 그 외에 잘 기억나지 않는 몇 명의 사람들.


나는 한발 늦게 도착한 로버츠와 우연히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이탈리아 법인 현지인 E군과 친해졌는데, 연수가 끝난 후 함께 시내 구경을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오후 다섯 시 연수를 마치고 우리는 다 같이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은 온갖 트램과 기차가 모이는 곳이라, 시티로 가려면 이곳에서 기차를 타는 게 가장 빨랐다. 표를 사고 아래로 내려가자, 승강장에 A군이 혼자 서 있는 게 보였다. 늘 B군과 함께 다니던 터라 무슨 일로 혼자일까 싶어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시티 가시면 같이 가실래요?”

“아 네, 좋죠.”

“혼자 오셨어요? 항상 둘이서 다니시는 것 같던데.”

“아, 저희 둘 다 루마니아 법인이거든요. 오늘은 운동하신다고 바로 숙소로 가버렸어요.”


시내를 오가는 기차 안에서 우리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한국이 맞지 않아 해외로 나왔다고 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했지만, 수직적인 업무 문화가 어지간히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할머니 손에 자랐다는 그는 동갑내기 여자애인 나보다도 애교가 많고 천진난만한 느낌을 주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 유연하고 단단한 느낌을 주었다. 지금은 루마니아인 여자 친구가 있고, 일을 쉬고 싶을 때면 아무 이유 없이 편하게 휴가를 낸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나치게 관찰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난생처음 보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한 편, 암스테르담은 도착한 그 순간부터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기차역을 나서는 순간 진하게 풍기는 대마초 향. 호주에서도 종종 맡았던 향이라 바로 알았다. 다만 기차역에서부터 도시 전체에 대마초 향이 풍기는 건 처음이었다. 대마초를 하지 않아도 향에 취할 것 같았다. 이거 대마초야? 라고 묻는 내게 로버츠와 E군은 웃으면서 말했다.


“몰라? 네덜란드는 대마초와 여자의 나라야”


그 의미는 곧 알 수 있었다. 시내를 구경하며 지나가는 시내 중앙 한복판에 굉장히 사실적인 누드 마네킹이 가득 세워져 있는 길이 있었다. 빨간 조명을 받으며 당당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델 같은 느낌의 마네킹이 곳곳에 서 있어서, ‘와 서양 애들은 정말 비현실적인 비율의 마네킹을 만드는구나’ 생각하며 지나가는데, 그들이 움직였다.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포즈를 바꾸는 것이다. 나는 놀라서 물었다.


“뭐야, 저 사람들 다 사람이야?


그들은 내 반응이 재미있는지 깔깔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말했잖아. 여기는 대마초와 여자의 나라라고.”


돌아가기 전, 우리는 기념품으로 대마초 쿠키를 샀는데 (초코칩 쿠키처럼 다양한 강도의 대마초 쿠키를 팔았다) 나는 그마저도 대마초에 취해 돌아가는 데 문제가 생길까 싶어 그만두었다(이런 면에서 나는 어지간히 쫄보다). 그 후 리가에 돌아와 네덜란드에 대한 소감을 묻는 동료들에게 나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원래 네덜란드는 총각 파티의 명소야. 나도 젊을 때 세 번이나 갔다고.”



그렇게 나의 첫 네덜란드 출장은 충격으로 막을 내렸다. 아, 내가 생각했던 튤립과 풍차는 차를 타고 조금 나가면 있는 외곽 마을이 유명했는데, 현재 네덜란드의 ‘풍차마을’로 유명한 그곳에는 풍차가 단 세 대 남아있다고 했다. 이마저도 관광을 위해 남겨놓은 거라고.



동화 같은 꿈의 도시 네덜란드, 너는 정말 동화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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