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만 손해를 보는게 아닐까?
입사했을 무렵 회사에는 내 또래의 여직원이 둘 있었다. 한 명은 반년 전에 입사한 동갑내기였고, 다른 한 명은 불과 한 달 전에 (내가 오고 한 달이 채 안 돼서) 입사한 두 살 연상의 여자였다. 워크 퍼밋(Work-permit)이 발급되고 얼마 뒤, 우리는 다 같이 런던 여행을 가기로 했다. 영국은 유럽 연합에서 탈퇴했지만 여전히 수요가 많은지 거의 매일 비행 스케줄이 있었고, 저가 항공도 많았다.
마침 연휴가 있어, 바로 실행에 옮겼다. 삼박 사일의 런던 일정 중 나는 둘째 날 점심즈음에 합류하기로 했다. 그때 즈음 전 직장 동료들이 유럽 출장을 온다는 연락을 받아 독일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렇게 첫 유럽 여행 일정이 정해졌다.
목요일 독일 출국, 금요일 아침 런던으로 이동하여 일요일 저녁에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목요일 점심즈음 도착하여 독일 구경도 할 수 있고, 나름 알찬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유럽에 살기 전, 내게도 유럽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수많은 예술가가 함께한 프랑스와,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한 이태리와 스페인, 맘마미아의 도시가 펼쳐질 것 같은 청아하고 이색적인 느낌의 그리스와, 어릴 적 좋아했던 동화책에 나온 스위스의 알프스 산, (얼마 전 출장으로 무너진) 네덜란드의 풍차와 튤립, 신사와 귀족들이 살 것 같은 영국과 가장 게임 도시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는 독일도 그중 하나였다.
뒤셀도르프에 도착해 짐을 두고 마을로 나갔다. 그곳은 조용하고 넓은 마을이었다. 마을을 지나는 중간에 있는 커다란 호수와 광장의 분수대가, 흡사 게임 맵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 또한 굉장히 현대적인 도시였고, 오히려 넓고 조용한 학자가 살 것 같은 유럽 도시에 가까웠다. 초록초록한 나무들과 호수가 있는 현대적인 건물과 커다란 도시가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 처치와 닮았다.
근처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커피를 한 잔 마시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이런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게 될까? 길에는 쓰레기가 하나 없고, 바닥은 밝은 회색 벽돌로 반듯하게 깔려있고, 길을 걸어 다니면 파스텔 톤의 건물들 사이를 바라보며,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과 초록빛의 녹음을 느끼며 자란 아이들은 어떤 어른이 될까. 유럽을 다니며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다. 먹고사는 데에 목매지 않는 사회. 깨끗한 곳에서 태어나 잘 정돈된 길을 걸어 다니며 초록빛 공원을 산책하며 자란다면, 공부를 하지 않아도, 전문직종에 종사하지 않아도 복지만으로 먹고살 수 있는 곳에 태어난 아이들은 무엇을 추구하며 살게 될까.
뒤셀도르프는 아마도 분명 살기 좋은 동네임이 분명했지만, 관광을 하기에는 조금 심심하 동네였다. 유월의 하순은 꽤 더웠고, 몇 시간 정도 돌아보자 지친 나는 백화점에 들어가 진저비어를 마시며 시간을 때웠다. 사실 호주에서 먹던 레몬라임비터를 먹고 싶었는데, 그런 메뉴는 없다고 했다. 어쩌면 어디에나 있던 그 음료는 사실 호주에만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세 시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을 남기고 공항에 도착했다. 유럽 안에서의 이동은 대체로 한국의 국내선을 타는 느낌인 데다, 뒤셀도르프의 공항은 작은 편이라 굳이 빨리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럴 수가. 그곳은 사람들로 꽉 차 있어, 줄의 끝이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직원들이 '여기가 끝이에요! (End of the line)'이라는 푯말을 들고 서 있었다. 아무래도 국제선을 타는 사람들인 듯했다.
'에이, 설마 저 줄이겠어?'
하고 안일하게 생각한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간판에서 런던행 게이트를 찾았다. 비록 미국행 게이트보다는 그 줄이 짧았지만, 그래도 내 앞에 세네 바퀴쯤 되는 커다란 줄이 있었다. 온라인으로 체크인을 하고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짐 검사를 위해 그 줄의 끝에 섰다.
한 시간이 지나고, 줄은 삼분의 일 정도 줄어 있었다. 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슬슬 불안 해지기 시작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여기저기서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나도 급한데 새치기를 하는 뻔뻔한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더 조바심이 났다.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덩치 좋은 백인 남자들에게 '뭐 하는 거야? 줄 서 있는 거 안 보여?'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유럽 사람들의 특성인지 영국인의 특성인지 모르지만,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역시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하며 앞질러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거기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처지였다.
결국 나는 보안 검사대에서만 세 시간을 보냈고, 게이트에는 사십 분 늦게 도착했으며, 당연하게도 비행기는 떠난 뒤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비행사에 전화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노쇼로 처리되어 환불도 받을 수 없었다. 공항에도 따져보았지만 역시 소용이 없었다. 생각지 못한 갑작스러운 인파로 비행기를 놓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나는 망연자실하여 멍하니 게이트에 앉아있었다. 갑자기 영화 '터미널'이 생각났다. 아, 이런 기분인가. 이미 출국장을 나와 독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런던으로 가지도 못해 영국도 아닌 이곳. 터미널.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아. 아까 새치기를 했던 그놈들은 전부 비행기를 탔겠지? 지금쯤 비행기 안에서 깔깔거리며 맥주를 마시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 바보들은 시간이 가는데도 멍청하게 줄을 서서 기다리더군!' 하고 질서를 지키다 비행기를 놓친 우리들을 비웃으며 말이야.
한 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 정신을 차리고 비행기표를 알아봤다. 이미 보상도, 다음 비행으로의 연결도 불가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고 런던에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런던 여행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비싼 값을 치러야 했다.
결국 나는 다음 가장 빠른 비행기로 런던을 가는 걸 선택했다. 십만 원에 끊었던 비행기표를 놓친 값으로 오백유로(약 80만 원)가 넘는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라트비아로 돌아간다면 그나마 오십만 원에 그쳤겠지만, 그럼 결국 런던에서 계획했던 숙박과 돌아오는 비행기도 모두 날리는 거라 생각하니 그래도 런던에 가는 게 낫겠다 생각한 것이다.
이 사건은 제법 트라우마가 되었고, 이후로 나는 브리티쉬 에어라인을 타지 않았다. 새치기범들은 비행기를 탔을까? 어쩌면 우리는 '질서와 배려'라는 명목 아래, 착한 사람들만 손해를 보도록 만들어진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