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마지막 출근 날

혹시 퇴사하는 건

by 작은 꿀벌

영국에서 돌아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입사 후 삼 개월 정도가 지났을 무렵. 상사의 송별회가 있었다. 입사 반년 만에 퇴사를 알린 그의 소식은 내게 꽤 충격적이었다. 비록 비대면이지만 그래도 일단은 나도 면접에서 함께할 사람들을 보고 이직 여부를 선택했는데.


해외로의 이직은 생각보다 (아주) 간단하다. 내 경우를 보자면 이랬다. 당시 일본계 회사에 다니고 있던 나는 곧 오사카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비자까지 다 받아놓고, 코로나로 잠긴 국경이 풀리길 기다리던 중에 일이 벌어졌다.

어느 회식 날, 당시에 내 상사(혹은 전임자)였던 여자가 술주정을 했다. 그녀는 목소리가 크고 성격이 억센(것처럼 보이는) 여자였는데,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그래서인지 다른 직원들도 그녀를 그냥 다른 남자 직원들과 비슷하게 대했다. 그러다 나와 내 또래의 다른 여직원 한 명이 입사했고, 비교적 굉장히 여성스러운 우리를 차별한다고 느꼈단다. 그날 술자리에서, 상무님이 '억지로 마실 필요 없다. 여자들은 알아서 꺾어마셔라.'라고 했을 때, 그녀가 말했다.


"아니, 왜 차별하세요? 저렇게 얌전히 웃으면 술 안 마셔도 되는 거에요?"


그녀는 정확히 나를 지목하며 말했고, 나는 어이가 없었다. 주변에 있던 다른 동료들은 작은 목소리로 '쟤 또 저런다. 신경 쓰지 마라'고 나를 다독였다. 상무님이 나를 두고 말한 것도 아니거니와, 별다른 말 없이 잠자코 자리만 채우고 있던 터라 영문을 몰랐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계속 서러움의 비교 대상으로 나와 내 또래의 여직원을 걸고넘어졌다. 서러움을 토로하던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억측도 서슴치 않았다.


"과장님이랑 둘이 뭐 있는 거 아니에요?"


그녀에게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던 과장이, 나와 또 다른 여직원에게는 퍽 상냥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퇴근길에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걸 봤단다. 그야 둘 다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니, 퇴근 시간이 겹치면 방향도 겹친다.

그녀는 자신의 서러움을 토로하기 위함이었겠지만, 별 같잖은 이유로 불륜(그는 유부남이었기에)으로 지목당한 우리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술에 취하면 무슨 말이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날 회식이 끝나고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앞으로 이 회사에 다니면 오사카로 가더라도 저 사람이랑 계속 엮여야 한다 생각하니, 일본으로 가기 전에 이직해 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자기 전 술김에 한 이직사이트에 커버레터를 올렸다. 가지고 있던 커버레터가 영문뿐이라 영어로 올렸고, 경력을 일일이 입력해야 하는 게 귀찮아서 그대로 꺼버렸다. 이미 취해서 너무 졸렸고, 진짜 하고 싶어지면 나중에 할 심산이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일주일 내도록 이메일로 오퍼가 오기 시작했고, 그걸 계기로 유럽으로 이직했다. 모든 면접은 비대면으로 이루어졌고, 시차가 많이 나는 탓에 면접은 밤에 (유럽 기준으로는 오후 2~3시쯤) 이루어져 따로 시간을 뺄 필요도 없었다.


부장님과 (내 직속 상사가 될) 과장님이 면접관으로 들어왔다. (면접에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직의 동기가 사람이었던 만큼, 면접을 보는 내내 그들을 유심히 살폈다. 부장님은 면접 내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추측할 수 없는 무표정이었다. 어차피 본인은 올해 귀임할 예정이라, 주로 과장이랑 함께 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참 면접이 진행되던 중 질문이 없냐는 말에 나는 회식이 잦은 편인지 물었다. 부장님은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전사적으로 하는 일은 잘 없고, 부서마다 다릅니다.'라고 하셨는데. 그때 과장님이 손을 살짝 들고 말했다.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아마도 부서 회식도 없거나, 술 마실 일은 없다는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갑작스러운 소신(?) 발언에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또 조금 웃겼다. 부장님의 무표정한 얼굴과 엉뚱한 과장님의 발언은 꼭 무슨 콩트를 보는 것 같았다. 부장님은 '지금 왜 그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네요.'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아, 네. 그러시군요.' 하고 대답했다. 나는 그렇게 입사했다.


그런데 퇴사라니! 입사한 지 불과 두 달. 한창 바쁜 시기가 지났을 무렵 과장님은 나를 회의실로 불러, '대리님께는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라고 운을 떼었다. 순간 안 좋은 예감이 들었고 나는 농담 반 불안 반으로 물었다.


"혹시 퇴사하시는 건 아니시죠?"


"네, 맞습니다."


나는 아주 당황했고,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이미 과로로 많이 지친 상태였고, 병이 재발하여 고생하고 있었다. 나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치료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그를 (잡히지도 않았겠지만) 잡을 수 없었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말 그대로 '과로'로 병이 생긴 것이었고, 그만큼 많은 잔업과 야근을 해왔다. 그런 그를 대체할 사람은 달리 없었다.


그의 마지막 출근 날, 나는 많이 울었다. 섭섭한 건지, 불안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이직하며 많은 회사를 떠나왔지만, 정작 내가 회사에 남겨지는 상황은 처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직 적응하지 못한 불안함과, 유난히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던 상사의 부재가 중첩되어 눈물이 났던 것 같다.


나이를 먹고도 슬플 수 있는 건 아마도 좋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럽에서의 삼 년간 그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떠났고, 나 역시 떠나왔지만 슬픔은 그 시간 속에 단 두 번, 아주 드물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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