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지랑 풍차 중에 뭐가 좋아?

by 작은 꿀벌

폭염이다. 오월부터 여름이다 했더니, 유월이 되니 가만히 누워 있어도 땀이 맺힌다. 삼 년 만에 겪는 한국의 여름은 내 기억보다 훨씬 더 길고 뜨겁다. 벌써 몇 주째 이어지는 더운 날씨가 낯설다. 이제 유월에 들어선 참인데 벌써 에어컨을 틀어야 하는지. 내가 더위를 많이 타는 건 아닐까? 추운 나라에 오래 있던 탓에, 나도 모르게 그 온도에 몸이 맞춰진 걸까.



차에서 내려 부장님을 따라 걷는다. 식당 앞은 항상 자리가 없어 조금 떨어진 유료 주차장에 세우고 길을 건너간다.


“아직도 쌀쌀하네요. 언제쯤 따듯 해지는 걸까요?”


“이제 유월이니까 한 달 정도 있으면 여름이 왔다가 금세 갈 거야. 어, 여름인가? 싶으면 어느새 눈이 오거든”


식당에 들어가 쌀국수를 주문한다. 'The Asian'이라는 베트남 쌀국숫집이다. 사장님은 한국분이다. 리가에 딱 두 군데 있는 한식당(비록 공식적으로는 베트남 음식점이지만)이다.



한 식당은 고사하고 한국인도 몇 명 없는 이 도시는 발트해에 인접한 ‘라트비아(Latvia)’의 수도인 ‘리가(Riga)’다. 수도라고 하지만 스타벅스도 없고 다이소도 없는, 정말 어디에나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대부분 없는 작은 도시다. 제대로 된 일식당은 하나도 없고, 그나마 베트남 음식점과 중국 음식점이 두세 군데 있다. 야근할 때면 주로 ‘만리장성’과 ‘올드 상하이’라는 중국 음식을 시켜 주는데 꽤 맛있다. 이럴 때 인구의 힘이라는 걸 느낀다. 어디를 가도 맛있는 중식이 있다. 그들은 정말 어디에나 있다.



곧 주문한 쌀국수와 치킨 요리가 나왔다. 호주에 살 때부터 바뀌지 않는 취향은 비프 포(Beef Pho)다. 치킨도 시푸드도 먹을 만하지만 결국 비프로 돌아오게 된다.


“김 대리는 이번에 BI 트레이닝 가나?”


“아 네, 간다고 들었습니다.”


“누구랑 가지?”


“로버츠랑 갑니다.”


“그래. 간 김에 주말에 풍차도 좀 보고 주변 여행도 하고 그래.”


“이런 세미나는 매년 있나요?”


“원래 매년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 했지. 이번에 하는 게 삼 년 만인가? 비자는 나왔나?”


“아 네, 수요일에 찾으러 갑니다. “


일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더 지나 비자를 받는다. 그때까지는 통장을 만들지 못해 급여를 받을 수 없다. 덕분에 나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용돈 카드(월급에서 까는 거지만)로 생활하고 있다.



삼월 말, 열여섯 시간을 거쳐 도착한 리가의 첫인상은 휑했다. 새벽에 도착한 탓도 있었겠지만, 코로나의 여파가 완전히 풀리기 전이라 구시가지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겨우 욕조에 몸을 담그고 일어난 다음 날 아침, 과장님 손에 호텔로 업무용 PC와 스마트폰이 배달 되었다. PC와 필요한 계정들은 이미 세팅이 끝나 있었고, 스마트폰과 유심도 설정이 끝나 있었다. 그 외에 회사 수첩 같은 것들을 건네주며 말했다.


“대리님, 오시자마자 죄송하지만, PPT를 만드셔야 합니다.”


아직 시차 적응을 못해 반 좀비 상태였던 나는 ‘네?’라는 말만 반복하며 업무 이야기를 들었다. 그 후 머지않아 이 법인은 일손이 아주 부족한 상황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또 곧 여러 인사 문제가 생기는 탓에 나는 몇 달 동안 아주 다채로운 업무를 해야 했다. 개중에는 많은 부분 ‘이걸 내가 하는 게 맞는 걸까?’ 싶은, 일개 대리가 하기에는 중대하다 싶은 업무들을 받아 당황한 기색을 보일 때면 부장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 생각하고 뽑은 거야.”


이후 회상하며 정말 그런 걸까 하는 의구심이 뒤늦게 들었지만, 당시에는 아 그렇구나. 원래 이런 것까지 하는 거구나. 하고 주는 대로 받아 업무를 처리했다. 그래도 아침에 다시 본 도시의 풍경은 이국적이었고, 어느 날인가 상상하던 유럽의 도시 그대로였다. 파스텔 톤의 건물들과 하얀 자갈이 박혀 있는 도로, 알 수 없는 언어로 쓰여 있는 간판들 탓에, 흡사 서구 영화 세트장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일주일 지나면 식상해 진다는 게 함정이지만.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복귀하니 로버츠와 과장님이 키득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또 시시한 농담을 하고 있는 걸까 싶어 (내가 온 뒤로 우리 셋은 시종일관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고 키득거리는 게 일상이 되었다) 옷장에 코트를 걸로 자리로 돌아오니, 로버츠가 물었다.


“Hey, what do you prefer? Sausage or Windmill?” (소시지랑 풍차 중에 뭐가 좋아?)


“뭔 말이야. 소시지랑 풍차?”


“응. 지훈이 물어보던데 출장 어디로 가고 싶냐고.”


무슨 말인지 몰라 과장님을 바라보았다.


“소시지랑 풍차가 무슨 말이에요?”


“BI트레이닝이요. 독일이랑 네덜란드 중에 골라야 하잖아요. 대리님은 뭐가 좋으세요? 소시지? 풍차? 아니면 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