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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Jun 04. 2020

모르면 배우는 게 인생이다.

걷는,사람-제주 올레 3코스

올레 3코스의 시작은 온평포구다. 제주 동쪽 끄트머리 성산항에서 남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곳. 3코스는 육로인 3-A와 바닷길인 3-B로 잠시 나뉜다. 육로는 김영갑갤러리를 지나고, 바닷길은 신산리마을카페를 지난다. 양쪽 모두 매력이 있지만 오늘은 요행 동행이 있어 3-A를 택한다.


저 멀리 해녀들이 물질을 한다. 요즘 매스컴에서 한창 유행인 괭생이모자반이 해변가에 널려 있다. 물질하던 해녀들의 숨골을 막는 몹쓸 것으로 전락했다. 지들도 그저 살아가는 생태인 것을 말이다.


아침부터 안개가 자욱하다. 운치는 있지만 오늘 풍경은 글렀다. 비가 오지 않길 바랄 뿐.


정갈하게 갈아놓은 사래.


6월의 제주는 수국이 한창이다. 길거리 어디서나 갖가지 색의 수국과 산수국이 널려 있다. 꽃잔치가 따로 없다.



꽃이 예쁘면 나이가 들었다고...? 실물을 영접해도 감흥이 없다면 당신은 안드로이드.


기어코 빗방울이 떨어진다. 하지만 스쳐갈 것이다. 비옷이 아닌 우산을 택한 자의 바람이다.


풍문으로만 듣던 접붙이기... 한라봉인지, 레드향인지, 천혜향인지 모를 것들이 자랄 것이다. 호모데우스의 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위용을 자랑하던 붉은 동백이 이젠 흔적도 없다. 몽글몽글 돋아난 것들은 조만간 동백기름으로 소용될 것이다.


내게 식물은 그저 꽃, 나무, 풀이 전부이다. 저것이 무슨 꽃이냐 물으면 빨간 꽃, 혹은 노란 꽃. 저것이 무슨 풀인고 하면 잡풀, 혹은 나물? 식물 이름 백치인 나는 이름만 백치가 아니라 실물 백치임을 실감한 날이다. 게 실물과 이름의 일치를 알려준 스승님들이다.


만약 봉평쯤에서 저것들을 보았다면 나는 당당히 '메밀꽃이요'하고 답했을 것이건만, 6월의 제주에 난데없이 마주치자니... 역시 맥락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헌데 왜 제주에 메밀꽃이?라는 세젤우문(세상에서 제일 미련한 질문)에 한반도 메밀의 70%는 제주산이라는 현답을 들었을 뿐.


희끗희끗, 노릇노릇 돋아난 잔잔바리들은 '인동'. 아, 그 유명한 인동차의 인동? 겨울을 이겨낸다는 인동? '노주인의 장벽'에 무시로 내린다는 인동차의 그? 머릿속에 개념으로만 떠도는 이름은 세상 쓸모없는 지식임을 깨달았다. 꽃잎들을 따서 말려 볶은 후 우린 찻물까지 마셔봐야 그 이름을 실감할 듯하다.


지천에 널린 이 아이의 이름 역시 풍문으로만 들은 바 있는 '엉겅퀴'


제주의 민들레는 키가 삐쭉 크다. 역시 환경이 좋으니 주눅없이 소신껏 자라는구나,는커녕 서구종이라는 설명.


난 진정 몰랐다. 아버지의 제삿상에, 육개장에, 때로는 돼지두루치기의 한켠에 볶아지던, 백이숙제가 먹다가 아사했다는 그 고사리가 저런 자태일 줄을 말이다. 4월 말에서 6월의 제주는 지천으로 솟아난 고사리를 캐는 여인네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어린 아이의 손을 왜 '고사리 같은'이라고 하는지 이제야 알았다.


강활. 과연 생긴 모양에 걸맞는 이름이로다.


3-A에는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낮은 오름을 지난다. 통오름과 독자봉. 너무 잔잔바리라 오름인 줄도 모르고 지난다.


뭐, 언젠가 먹어봤을지도 모르지만 실물영접은 처음만 같은 고비. 나물로 먹는다고 한다. 서울에선 비싼 나물이지만 정작 제주민들은 안 먹는단다.


아까 보았던 인동이 양껏 피었다.


잎을 따서 떡을 싸면 상하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단다. 나는 왜 찹쌀떡만 생각이 날까. 망개떡을 싸는 망개.


산딸기도 아니고, 산딸나무라는데... 아, 6월의 제주는 꽃이 길거리에 아주 지천이다.


접시꽃당신


이건 작년에 들은 바 있어서 아는 척. 시계같이 생긴 당신은 시계꽃.


김영갑갤러리에는 제주의 풍경과 오름이 가득이다. 다 똑같이 생긴 액자에 다 똑같인 생긴 것 같은 용눈이오름이 가득인데, 다 다른 용눈이오름이다. 계절이 다르고 하늘이 다르고 그림자가 다르며, 바람이 다르다. 영화 <스모크>에서 같은 거리의 다른 모습 수천 장을 찍어대던 하비 키텔의 사진첩을 보는 기분이다.



스쳐간 어성초.


그대 아는가. 저 멀리 보이는 감자꽃을. 감자꽃이 저리 예쁠 줄 알았다면, 감자꽃 필 무렵이라도 지어보는 건데.


겨울엔 그리 귀하던 산딸기가 오동통한 볼살을 뽐내며 나를 잡아잡수 한다.


송엽국과 함께 제주 곳곳, 바위 쨈쨈 흐드러지게 핀 금계국. 국화과 출신인 건 알겠음.


산길을 지나 이젠 바다입구다. 지루할 만하면 바다를 쫙 펼쳐내는 것이 제주 올레의 특기다.


겨울의 바다목장은 온통 귤껍질로 그득했는데... 오렌지색 귤껍질 밭은 어데로 가고...


금계국만 다소곳이 피어 있구나.


날 잡아잡수...


물질을 끝낸 해녀 할망의 맨발자국.


더이상 수국을 논하지 말라.


다리가 아래쪽으로 움푹 들어가 있다. '배고픈 다리'... 아마도 이름지은 이의 배가 고팠을 것이다.



이 단단하고 깜깜한 돌덩어리들의 끝에


어찌 이런


백사장이 불현듯 현신한단 말인가. 저 멀리 서핑 초짜들의 웃음이 부러워


등산화를 벗어 던진다.


밀려온다면


받아주마.


떠밀려온 해초들이 싱싱하다. (초장 급구)


고단한 다리를 절뚝이며 다가가면


세상 없는 게으름뱅이, 간세다리도 폭삭 속았수다.


맨날 요런 것은 아닝게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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