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언덕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벼워 둥둥 떠오를 것만 같다. 마음이 뿌듯하고 부풀어 오른다. 두 팔을 벌리고 손끝이 물결처럼 부드러워지며 혼자만의 춤사위가 벌어질 판이다. 걷는 내 모습이 선명해지고 자신감이 차오른다. 오랜만에 글쓰기 모임을 마치고 나서는 발걸음이 이렇게나 즐거운 것을 보니 이제 나도 쓰는 사람이라고 어디 명함을 내밀어도 되지 싶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글쓰기 모임 날이 다가오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발표는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그래도 한 번은 해야 한다면 숙제는 미루지 않겠다고 손을 들어 버린다. 그러고 나서는 한 달 내내 가슴앓이를 한다. 무엇을 쓰지, 무엇을 쓴단 말인가? 이렇게도 저렇게도 몇 줄 쓰다가 지워버리고 이건 아니지 싶어 머리채만 잡아당긴다. 이랬던 내가 이제는 합평의 시간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합평의 시간, 모두들 장점은 필요 없고, 단점을 이야기해 주세요. 이렇게 말하며 전투적으로 펜을 집어 든다.
"저는 단점도 좋지만 그래도 장점을 조금만 이야기해 주시면 용기가 날 것 같아요."
나는 수필교실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친해지려는 노력을 하는 대신 그들의 글을 읽었다. 그들이 쓴 글을 집에 가서 읽으며 이름을 기억하고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그저 별다를 것 없는 보통 사람들처럼 앉아 있었던 그들의 마음 마음마다 각기 다른 아픔과 시련이 있었고, 그것들을 글을 쓰며 극복해 나가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마음을 풀어놓는 사람들은 용기 있다.
글을 쓰며 움츠려있던 삐걱거리는 뼈 마디마디를 맞추어 '나'라는 인간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글쓰기 모임을 나의 첫 번째 약속에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고 살아온 시간 속에서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내 마음을 알아간다.
처음의 합평을 대하는 내 자세는 아주 많이 부끄럽고, 아프고, 쓸쓸하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꿋꿋하게 견뎌냈다. 묶인 마음의 매듭을 조금씩 조금씩 느슨해지고, 그 사이로 허물어진 마음이 삐져나온다. 쓰고 싶은 간절함이 쓰는 즐거움이 그렇게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사무직을 전전하다가 결혼을 했고, 엄마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백수가 되었다. 사회가 인정해 주지 않는 주부라는 직업은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했고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에 불안은 더해왔다. 뭐든 해보겠다며 손을 대었지만 신통치 않았다. 햇살 좋은 봄날에는 여행자가 되고 싶었고, 음악회에 가면 악기라도 하나 연주해 볼까 싶었다. 아이들 학교축제에서는 풍선공예라도 해야 되나 고민했고, 아이가 학년이 올라가면서 수학이나, 논술을 집에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으로 논술지도사, 수학지도사를 공부했다. 그렇게 쌓아 놓은 자격증이 수십 개가 되어도 나라는 사람은 여전히 동굴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한줄기 빛으로 밝혀 주며 길이 되어 준 것이 글쓰기였다. 그 빛을 희망 삼아한 글자 한 글자 쓰는 사람이 되었다.
한동안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얼마 전에 타인에게 물었던 어리석은 질문이 돌아 내게로 왔다. 요즘 왜 안 쓰세요? 카페에 가지 않았고 집은 집중이 되지 않고 도서관 컴퓨터는 두 시간밖에 쓸 수 없답니다. 이렇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섬처럼 혼자 희미하게 서 있던 내 옆에 하나 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 옆에 있었던 사람들 나에게 들려주던 그들의 이야기가 다리가 되어 나는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다시 시작해야지 글쓰기 근육을 키워야지 하면서도 완성하지 못하는 굴레에 빠져버렸다.
어느 시구처럼 "내가 만일 인생을 다시 산다면" 더 많이 사랑하고, 도전하며 모든 것을 글로 쓰며 희미한 안갯속의 내가 진짜 모습을 찾아갈 때까지 용기를 내어 보고 싶다. 내가 선명해지고 있는 시간, 글을 쓰는 순간이 좋다.
내 안에 이렇게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