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올지 몰라
비 맞지 않도록
옆자리에 우산을 올려 두었어
기다리는데
날개 젖은 제비나비도
쉬었다 날아가고
민달팽이도 머물다 갔어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서
날아가지 않게
내가 꽉 잡고 있었어
혹시 네가 올지 몰라
화장실도 꾹 참고 기다렸어
언제 와?
비도 그치고 날도 개고
하루 종일 햇볕만 닿아서
내 옆자리 되게 따뜻한데
- 정다연, ‘옆자리’ 전문, <햇볕에 말리면 가벼워진다>, 창비교육, 2024
# 시 한 편이 나를 건드리고 지나간다. 정다연의 첫 청소년시집에 수록된 시. 사랑스럽다. 슬프다. 두 감정이 병존한다.
# 슬프다,라는 감정의 스펙트럼은 얼마나 넓은지. ‘슬픔’이라는 하나의 명사로 환원되지 않는 무수한 색깔들과 감정의 결들이 나란히 혹은 겹쳐지기도 하면서 거대한 팔레트를 이룬다. Shades of Sorrow라고나 할까.
# 이 시는 왜 사랑스럽나. ‘너’가 올지 몰라 옆자리에 우산을 올려둔 ‘나’의 마음은 ‘너’가 젖지 않기를 바라는 배려의 마음. ‘너’가 올지 몰라 화장실도 꾹 참고 기다리는 ‘나’는 ‘너’가 오기를 기다리는 짝꿍의 마음.
# 이 시는 왜 슬픔의 색채를 띠나. ‘언제 와?’라고 묻는 ‘나’의 마음은 ‘너’가 빨리 왔으면 하는 마음이면서 동시에 ‘너’가 오지 않을(못할) 수도 있다는 마음을 드러낸다. 언제 와? 이 짧은 물음이 주는 다양한 감정의 갈래들. 궁금함, 지루함, 불안함, 초조함 등등. “언제 와?”라는 말과 더불어 이 시의 압권은 마지막 문장.
“내 옆자리 되게 따뜻한데.”
비도 그치고 날도 개고 종일 햇볕이 닿아서 따뜻해진 ‘옆자리’를 ‘너’에게 내주고 싶은 마음. ‘너’는 ‘나’에게 소중한 존재다. 그런데 ‘너’는 지금 내 옆에 없다. ‘나’는 ‘너’를 기다린다. ‘나’는 ‘너’가 그립다. 그리움.
# 그리움은 닿지 않아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부재하는 대상에 대한(대상을 향한) 감정. 지금 내 눈앞에 없는 ‘너’는 부재하는 대상이자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 그리고. 모든 그리움은 모종의 슬픔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리움을 느끼는 주체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 동시(물론 이 시를 동시나 청소년시로 제한해서 분류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를 읽고 눈물이 나온 적 있나? 없(는 것 같)다. 오늘 처음 경험한다. 이 시의 내용이 슬퍼서가 아니라, 이 시를 읽는 나의 마음이 슬퍼서일 것.
# 나의 ‘옆자리’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나’를 위해 따뜻하게 덥혀놓은 누군가의 ‘옆자리’에 대해서도.
# 며칠간 흐리고 춥더니. 오늘은 햇볕이 좋다. 햇볕에 말리면 가벼워진다. 맞는 말이다.
#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2024-3-8)
https://youtu.be/hjpF8ukSrvk?si=z2gu9woGiCWhGk0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