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게 지내던 회사 동료들이 최근 우수수 퇴사했다.
회사에서 누가 나가면 분위기가 금방 묘해진다. 어디로 가는지, 잘 풀려서 가는지, 무슨 문제가 생겨서 나가는지 금세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전해진다. 업계가 좁은 편이라면 퇴직자가 밝힌 이유나 다음 거취가 사실일 확률이 높지만, 많은 경우 더 이상 회사가 자신을 잡지 못하도록 거짓 이유를 대고 떠나기도 한다. 친한 동료 한, 둘만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 떠도는 소문들을 한 일주일 동안 흥미롭게 서로 나누며, 남은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감정으로 퇴직자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퇴직 사실을 접했을 때 보통 처음 드는 생각은 “부럽다!”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 다니던 회사가 갑자기 별로로 느껴지면서 커리어가 뒤쳐지는 느낌이 든다. 나만 도전 없이 고인물이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더 늦으면 다른 곳에서 받아주지도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온다. 발 빠른 사람들은 기분 탓이라도 이직 사이트를 검색해 본다.
퇴직자와 비교적 친한 사이일 경우, 뒤따르는 생각은 “좋은데로 가면 나도 좀 당겨주길”이다. 똘똘한 퇴직자가 어련히 잘 알아보고 갔을 테니 좋은 회사임은 분명하다. 또 요새 워낙 괜찮은 직원 구하기가 힘들다고 하지 않던가? 만약 새로 간 그곳에서 사람이 필요하다면 믿을만한 나에게 먼저 연락 달라고 하고 싶다. 물론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고, 당겨달라는 그 마음도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퇴직자와 별로 친분이 없거나 감정이 좋지 않은 사이일 경우에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나가 봤자 똑같지 뭐. 고생깨나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회사 밖의 앞길이 조금은 험난하길 살짝 빌어본다. 훗날 그가 힘들게 살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와 내가 회사생활에 안도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못된 생각이지만 이 또한 어차피 혼자만 잠깐 하다 없어질 생각이다.
또 공통적으로 이런 바람도 가져 본다. “제발 나가면서 다 찌르고 나가줘라. 어차피 넌 이제 잃을 것도 없잖아.” 남은 사람들은 퇴직자가 부디 한 명의 열사가 되어 회사의 부조리를 다 고발하고 나가주길 바란다. 어제도 나한테 야근을 강요한 저 몰상식한 실장, 자기한테 살살거리는 사람은 능력 없어도 챙겨주는 부조리한 팀장, 수년간 오를 기미가 없는 연봉, 다른 기업에 비해 한참 뒤처지는 복지제도 등등. 퇴사자가 인사팀 또는 본부장과 면담을 마치고 돌아오면 커피 한 잔 하자는 동료들이 많은 이유 이리라.
냉정하게도 퇴직자의 빈자리는 퇴직자가 정말 회사를 떠난 후 단 며칠만 지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신기하리만큼 회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흘러가고, 볼 것도 없는 부서에 또 새로운 사람은 어김없이 제 발로 찾아온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문득 퇴사자가 떠오를 때가 있다.
“야, 이거 어떻게 하는지 아냐?”
“아뇨? 그거 아마 퇴직한 000가 하던 일인 것 같은데요?”
“하, 어떡하지? 친한 사람 전화 한 번 해봐.”
“…”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이 이름을 남기듯, 퇴사자는 업무 공백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