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들의 육아휴직이 점점 많아진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주(main)양육자가 아빠인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대다수의 아빠들에게는 돈을 벌어오는 것이 여전히 가장 중요한 임무이며, 엄마가 주양육자인 경우가 많다. 물론 맞벌이 가정에서는 할머니 또는 육아도우미가 육아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겠지만, 어떤 경우에도 아빠는 주양육자가 아니다.
나 또한 아이를 낳고 2년 동안은 주양육자 타이틀을 달지 못했다. 새벽에 일어나 아이가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준비하고 전자식 도어락을 소리 안 나게 수동으로 열면서 집을 나섰다. 해가 지고서야 퇴근하고 집에 오면 지친 아내에게 아이를 넘겨받아 의욕적으로 애정표현을 퍼붓지만, 한 시간도 채 못 놀아주고 지쳐버리기 일쑤. 아내와 함께 아이 목욕을 시키고 아이를 재우면서 같이 잠들고, 퍼뜩 눈을 뜨면 어김없이 다음날 새벽이었다.
당시에는 아내가 육아휴직 중이었고, 주양육자는 아내였으므로 육아의 최종 책임자는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육아에 있어서 부부간에 내 책임, 니 책임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싶지만 24시간 엄마 아빠가 둘 다 붙어서 육아하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특정 시간대의 육아 담당자는 정해지기 마련이다. 그 시간대에 아이에게 발생하는 일은 오롯이 담당 양육자의 책임이며, 담당자는 아이의 안전과 온전한 발달을 위해 최선을 다할 의무가 주어진다.
그 무겁고도 숭고한 임무를 하루 종일 수행하던 아내는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아 마땅하지만, 어째서인지 아이는 엄마보다 퇴근하고 돌아온 나를 더 반긴다. “우리 아들은 누구 아들이야?”하고 장난스러운 질문을 던질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음.. 아빠 아들? 엄마 시어(싫어).” 아내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아이에게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지만 아이는 아랑곳 않고 오히려 엄마에게 보란 듯이 아빠를 안고 늘어진다. “나도 너 싫어. 아빠랑 살아.”라면서 세탁기로 향하는 아내. 그때는 아이가 정말 아빠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해도 아빠와 아들은 남자의 의리로 맺어진 어떤 믿음과 우정 같은 게 있나 보다 했다. 주양육자가 돼보긴 전에는.
이후 아내는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했다. 그리고 그 시기에 맞춰 나는 육아휴직에 돌입했다. 육아휴직을 앞두고는 아이와 함께 보낼 시간과 그 속에서 만들어갈 추억에 대해 꽤나 기대했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아이는 내 예상보다 더 통제불능이었고, 더 위험에 쉽게 노출됐으며, 바쁠 때 더 밍기적거렸고, 더 고집불통이었다. 더불어 나는 예상보다 아이에게 더 위엄이 없었으며, 더 참을성이 없었고, 더 쉽게 지쳤다. 그 결과 나는 아이에게 끝없이 소리 질렀고, 아이는 아랑곳없이 사고를 쳤다.
아내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더디게 다가왔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하원 하는 순간부터 아내가 집에 돌아오는 7시 반 까지는 중력이 엄청나게 큰 행성의 시간이었다. 나름대로 아이를 혹하게 할 만한 콘텐츠를 준비해놓고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진행시켰지만 아이는 내 생각만큼 콘텐츠에 오래 몰입하지 않았다. 어떨 때는 내가 준비한 신생 장난감보다 그 장난감의 에어캡 포장에 더 관심을 보일 때도 있었다. 마치 캣타워를 제쳐 두고 택배 박스 안에 몸을 말고 들어간 고양이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와의 시간을 다른 것으로 채우는 게 목적이었으므로 그게 에어캡이든 뭐든 전혀 상관없었다.
주양육자는 시간별로 해야 하는 미션이 있다. 아이의 컨디션이 평소와 같다면 정확한 시간에 밥을 먹여야 하고 간식을 주어야 하며, 투약할 약이 있다면 그것도 챙겨야 한다. 중간중간 기저귀 체크도 필수다. 만약 아이가 아픈 기색을 보이거나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지 못했다면 병원 방문이나 낮잠 재우기 미션이 추가된다. 그리고 이 미션 중 하나라도 소홀히 한다면 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불안감이라는 강력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주양육자에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놀이나 장난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시험이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상적이고 고독한 노역이다.
그러다 저녁에 아내가 돌아오면 아내는 하루 종일 담아둔 그리운 마음을 아이에게 쏟아붓는다. 아이와 아내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그때, 난 간단한 인사를 남기고 설거지거리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