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의 좋은 점에 대하여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어요

by 숙제강박

사람의 외모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청소년기, 슬프게도 바로 그 시기에 소년, 소녀들의 자의식은 최고조에 오른다. 이마에 톡 튀어나온 여드름과 육중한 가방에 눌린 구부정한 걸음걸이, 철사같이 억세고 뻗친 머리까지, 티끌 같은 흠은 마음속에서 태산이 된다. 소녀들은 거울을 손에서 놓지 못하며, 소년들은 길을 걷다 유리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힐끗거린다. 발표나 질문 등 이목을 집중시키는 일은 무조건 안 한다. 식당에서 음식이 잘못 나와도 주목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단 그냥 먹기도 한다. 하루 동안 남들의 혹독한 시선을 넘고 넘어 마침내 잠들기 전 그들의 머릿속엔 한 가지 걱정만이 맴돈다. ‘사람들은 분명 오늘 내 흠을 놓고 뒤에서 일장 토론을 벌였을 거야.’

“걔 오늘 옷 입은 거 봤어?”
“어 색깔이 그게 뭐냐. 줘도 안 입겠더라.”
“발표하는 건 어떻고? 떨어서 더듬기까지 하더라고. 어버버버~”
“으. 정말 별로인 점이 한, 둘이 아니야.”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찬 소년, 소녀들은 마침내 자신을 포장하기로 한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연예인이 멋있다고 하니까 연예인을 따라 해 보기로 결심한다. 우선 옷을 산다. 옷은 내가 보기에 예쁜 것을 사면 안 된다. 내 취향은 검증되지 않았으므로. 대신 연예인이 입었던 옷을 묻고 물어 똑같이 입어본다. 머리나 화장품도 마찬가지다. 등굣길에 교무실로 끌려가지 않을 만큼의 스타일을 선택하고 똑같이 따라 해 본다. 걸음걸이도 말투도 모두 연예인을 보고 연습 또 연습. 한참 못 미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사람들의 험담이 절반은 줄었겠지?, 하고 안심한다. 아니, 안심은 아니다. 아직 살을 좀 더 빼야겠다.

콤플렉스로 똘똘 뭉쳐 다른 사람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던 20년 전의 나. 그리고 20년이 지나 목 늘어난 티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동네를 활보하는 지금의 아저씨.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지나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대해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면 단연 ‘과도한 자의식의 상실’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와 남들이 서로에게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지금의 나는 지나치는 동네 사람들의 시선 대신 나무와 하늘을 본다. 관심 있는 자동차가 주차돼 있으면 차 앞에 멈춰서 이리저리 한참을 들여다본다. 살 것도 아닌데 새로 생긴 가게에 들어가 주인에게 이것저것 물어본다. 20년 전의 나에게 털털하고 염치없는 지금의 모습을 보여주면 뜨악하고 더 혹독한 관리에 들어가려나,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편안한 얼굴로 한 번 말을 건네고 싶다. 누구를 따라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넌 예쁘다고. 그리고 네가 썸 탄다고 생각하는 국어학원 같은 반 여자애는 사실 너 잘 모른다고. 고개 돌리다 우연히 눈 몇 번 마주친 것뿐이라고.

나는 유설화 작가의 슈퍼 거북이라는 그림책을 좋아한다. 토끼와의 달리기 경주에서 승리를 거둔 거북이는 그 후 어떻게 살았을까, 에 관한 책인데 그 안에 나답게 사는 것에 대한 정수가 담겨있다. 거북이는 그 경주 후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다른 동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 사실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빠르지 않은 거북이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분골쇄신하고 결국 기차보다 빠른 ‘슈퍼 거북’이 되기에 이른다. 뼈를 깎는 노력에 지칠 대로 지친 거북이에게 때마침 토끼가 재대결을 신청해오고, 거북이는 토끼와의 경주에서 그만 잠이 들어 패배한다. 그 패배로 인해 거북이는 슈퍼 거북의 스피드를 기대하던 동물들에게 실망을 안기게 되지만 그 상황에서 거북이가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이나 패배감이 아니다. 거북이는 다른 사람들의 실망에서 되려 편안함을 느낀다.

물론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본연의 나를 찾는 건 쉽지 않은 과정이다. 때론 거북이처럼 수많은 사람을 실망시켜야 할지 모른다. 또 “본연의 나라는 게 정말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빠질 수도 있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주장처럼 타인에 의해 사회적으로 규정된 나를 하나씩 제거하다 보면 결국 본연의 나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연의 나를 찾아야 하는 이유가 부정되지는 않는다. 적어도 내 인생이 소중하다고 느낀다면 그렇다. 내가 아닌 것으로 사는 삶은 덧없기 때문이다. 시간과 노력을 들일 거면 남들이 관심 없는 나를 개조하는 대신 남들이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들이는 편이 낫다. 주식이나 부동산, 커리어에서의 성공 같은 거 말이다.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가 나일 때 비로소 찾아오는 편안함을 어떤 행복에 비할까? 그것은 결국 모든 것이 본성대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오는 편안함이다. 마침내 토끼가 경주에서 이기고 거북이가 지는 결과를 마주했을 때 토끼도, 거북이도, 구경하던 동물들도, 책을 읽던 나도 편안해지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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