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 없어서 미워하고, 미워할 수 없어서 사랑하는
양귀자 작가님의 소설 모순을 다시 읽었다.
꽤 오래전에 읽었지만, 그때는 그냥 스쳐 지나갔던 감정들이 이번에는 묵직하게 다가왔다. 책을 펼치자마자 느껴지는 감정의 무게가 낯설었다. 예전에는 그 무게를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던 걸까. 아니면 지금의 내가 변해버린 걸까.
사실 모순이라는 제목부터가 이미 이 소설의 핵심을 암시하고 있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미워하면서도 그리워하는 역설적 감정들. 그 복잡하고도 생생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가차 없이 책 한 권에 담겨있다.
안진진이라는 이름이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그녀는 우리 모두가 안고 사는 모순의 덩어리다. 어머니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하고,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는 그 복잡한 감정들. 어머니는 강인하고 거칠다. 자식을 위해 억척스럽게 살아온 그녀의 손끝에는 고단한 삶의 흔적이 묻어 있다. 그런데 그 손끝은 때로는 딸에게 상처를 남긴다. 안진진은 그런 어머니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한다. 그리고 그 미움 속에서 자신도 어머니와 닮아가는 것을 발견하고 두려워한다.
모순이라는 소설은 어머니와 딸이라는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벌어지는 애증의 변주곡이다. 강인한 어머니의 삶 속에 담긴 모순적 애정과 그 애정을 받아들일 수 없는 딸의 반발. 이 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결들이 하나하나 너무나 생생하고 나 역시 딸이기에 이제 읽는 모순은 어릴 때 읽었던 느낌과는 다른 공감이 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사랑하면서도 미워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굴레 같은 것. 양귀자 작가는 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의 대답은 한 가지로 고정되지 않는다.
학창 시절의 나는 이 소설을 단순히 ‘가족의 갈등’으로만 이해했다. 그때는 어머니의 강인함이 그저 무섭고, 진진의 반항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 어머니가 왜 그렇게 강해야 했는지, 왜 그 강함이 딸에게는 상처로 남았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문학소녀였다.
글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시절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영화에 빠져 살았다. 매주 극장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맞이하며, 세상의 모든 서사를 다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때 읽고 본 작품들을 다시 마주하면,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그때는 몰랐던 감정들이 이제야 보인다.
내게 모순은 그런 작품이다. 그때 읽었을 때와 지금 읽었을 때의 감정이 다르고, 앞으로 또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작품은 변하지 않지만, 내가 변하기 때문에 같은 문장이 전혀 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게 예술의 묘미 아닐까.
진진은 결국 어머니를 이해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이해하려 애쓴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할 수밖에 없는 그 감정의 어긋남.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람의 강함 때문에 상처받고, 그 상처를 안고 또다시 사랑을 갈망한다.
이 작품은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춘다. 왜 사랑은 늘 고통과 함께하는 걸까. 왜 가족은 가장 가까운 존재이면서도 가장 멀게 느껴지는 걸까. 양귀자 작가는 그 모순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 모순을 직시하게 만든다.
모순을 다시 덮으며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끝난 게 아니다. 언젠가 또다시 펼쳤을 때, 나는 또 다른 감정으로 이 책을 읽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지금과는 또 다른 모순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사랑과 미움은 한데 얽힌 감정의 두 얼굴이다. 그 모순을 안고 우리는 살아간다. 모순 때문에 흔들리고, 모순 속에서 길을 잃어도 결국 우리는 그 모순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 아닐까.
그게 우리가 견뎌내야 하는 삶의 무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