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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올라 Jan 17. 2023

내향형 인간의 캄보디아 여행기 02

동남아시아 - 캄보디아 씨엠립 02, 앙코르 와트 일출 투어와 영화관

내향형 인간의 캄보디아 여행기 01 https://brunch.co.kr/@w1989/28 



 호스텔 내부에서도 진행하는 일출 투어와 빅 투어, 스몰 투어 등등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선택하게 되면 호스텔에 머무는 사람들과 함께 투어를 하게 된다. 그러면 지내는 동안 계속 마주칠 거고 낯을 많이 가리는 나로서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 편하게 여행사에서 투어를 결제했었다. 앙코르 와트 일출 투어를 하는 날, 새벽 4시에서 4시 반 사이에 픽업을 온다고 하였는데 픽업을 안 오셔서 호스텔 앞에서 멍 때리며 앉아있었다. 호스텔에서 협약하여 진행되는 여행 업체는 이미 픽업을 왔는데 나 혼자서 로비에 앉아있어서 조금씩 추워졌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서 여행사와 연락도 되지 않아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데 4시 45분이 되자 호스텔 여행 업체의 가이드가 내 이름을 부르더니 같이 가면 된다고 해서 결국엔 호스텔에 머무는 사람들과 같이 버스를 타고 투어를 시작하였다. 시작은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마음이 조금 불편했지만 하루종일 조용히 가이드와 이야기하면서 투어를 잘 마무리하기는 했다. 11명의 일행들 중 나 혼자 동양인이라서 기분이 묘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대부분 일행이 있었지만 너무 이른 아침이라 다들 조용히 가서 마음에 들었다. 매표소에 먼저 도착하면 가이드를 따라서 원하는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나는 1일권($37)을 구매하였는데 코로나로 인하여 손님이 줄어들어서 2022년 연말 기준으로 1일권을 구매하면 2일 동안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앙코르 와트뿐만 아니라 그 일대의 모든 사원들을 볼 수 있는 티켓이며 입장권 도용을 방지하기 위해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할 때 구매하는 사람의 사진을 찍어서 티켓에 박아준다. 화질이 흐려서 사람들이 다 뭉개져서 나오기도 하고 귀엽게 찍히는 게 웃겼다.

 티켓을 구매하고 나서 다시 버스를 타면 바로 앙코르 와트로 출발한다. 일출은 자리를 잘 잡아서 사진도 잘 찍었다. 코르 와트의 이상과 현실이라며 앙코르 와트가 물에 비친 모습은 아름답지만 뒤를 보면 사람이 징그럽게 많다는 후기들이 많은데 그게 사실이었다! 지금도 찍은 사진을 보면 너무 아름답고 황홀한데 뒤를 찍은 사진에는 사람이 정말 콘서트 스탠딩할 때 우르르 몰려있는 것처럼 모여있어서 조금 웃겼다. 사람 사는 거 정말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새벽 네 시 반에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버스를 타고 졸린 눈을 한 채로 앙코르 와트에 와서 일출 사진을 찍기 위해서 다 같이 해를 기다리고 있다니.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기분이 참 묘했다. 일출을 보면서 웅장하고 압도되는 기분을 느꼈다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사실 나는 별 생각이 안 들었다. 일출보다는 하루종일 투어를 하면서 앙코르 와트의 벽과 조각들이 더 인상 깊었다. 압도되는 기분은 못 느껴지만 아름답기는 했다. 사진은 지금 다시 봐도 정말 잘 나와서 만족스럽다. 

앙코르 와트 일출 사진과 현실


 투어를 가기 전에 유튜브에서 전 날 한국어 가이드 영상들을 찾아보고 갔었다. 가기 전에 한국어로 미리 내용을 조금 숙지하고 가서 더 이해도 잘 되고 조각들을 하나하나 마음에 더 깊이 담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타프롬 사원을 가기로 마음먹어서 한국에서 '툼 레이더' 영화를 보고 왔었는데 영화 내용이 다 기억에 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보고 가길 잘했다. 바이욘 사원도 가고 앙코르 톰 남문도 보았다. 가이드 '터치'가 나에게 바푸욘도 가고 싶으면 말하라고, 한 명이라도 원한다면 바로 갈 수 있다고 했지만 다들 너무 덥고 많이 걸어서 지쳐 보였다. 2층은 인간세계, 3층은 천국이라는 중앙 사원을 계단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데 계단이 가팔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계단을 앉아서 내려오거나 너무 힘들어했다. 그러고 나니 바푸욘을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나 하나인 것 같아서 그냥 나도 포기했다. 여유롭게 지내면서 하루를 아예 앙코르 와트에서 보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다시 오게 된다면 설명 없이 혼자 쭉 돌아다니면서 차근차근 둘러보고 싶다. 앙코르 와트를 가는 교통수단을 구하는 게 조금은 어렵지만 가이드 투어 말고 아예 툭툭를 하루동안 빌려서 마음 편한 대로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했다. 가이드 투어는 마음은 편했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시간을 충분하게 보내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다.

 일찍 출발한 만큼 일찍 투어가 마무리된다는 점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오후 1시 정도에 각자 숙소에 내려주고 나는 바로 밥을 먹으러 'Haven'이라는 식당으로 갔다. 채식 옵션이 많다고 해서 선택한 식당이었다. Nom banh chok(코코넛 카레 국수)랑 스프링롤 튀김, 오징어 튀김을 시켰고 정말 오래간만에 밥다운 밥이었다. 오징어 튀김은 한국보다 더 맛있고 튀김가루가 알차게 붙어있었다. 카레 국수는 은근하게 그라스 향이 났고 고기를 하나도 넣지 않았는데 코코넛 밀크 덕분에 찐한 맛이 나서 너무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밥을 다 먹고 호스텔로 와서 호스텔에 있는 세탁기에 코인을 넣고 빨래를 돌렸다. 타이머를 맞춰놓고 시간이 돼서 갔더니 세탁기가 고장이 나서 탈수가 안되어서 옷들이 세탁기 속에 그냥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당황스러워서 리셉션에 가서 말하자 고쳐준다고 기다리라고 했다. 직원이 올라오더니 못 고친다며 남자 세탁기를 쓰라는 말에 그럼 이 탈수가 안 된 세탁물은 어떡하냐고 하자, 알아서 물기 짜서 옮기라고 해서 황당하여버렸다. 나는 3층 숙소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4층에도 여자 샤워실에 세탁기가 있기 때문에 그걸 쓴다고 말하고 빨래를 옮길 수 있게 봉투 같은 걸 하나 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쓰던 쓰레기봉투를 가져다주셨다. 차분하게 속옷도 있고 양말도 있고 아무리 그래도 옷인데 새로운 봉투를 주실 수 있냐고 하자 그제야 새로운 검정 봉투를 받을 수 있었다. 정말 기상천외한 일들이 일어나는구나! 내가 알아서 탈수가 안 된 빨래를 손이 부르터지도록 물기를 짜내서 봉투로 옮기고 물기를 머금은 빨래를 끌고 위층으로 가서 다시 빨래를 돌렸다. 베트남에서처럼 빨래 방에 맡길 걸 그랬나 싶었다가도 원하는 시간에 빨리 빨래를 끝낼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하고 뙤약볕에 익어버린 몸을 에어컨 바람에 식히며 그대로 잠들었다.

왼쪽은 파파야 샐러드와 팟씨유, 오른쪽은 헤이븐Haven 식당


 다음 날은 지친 몸을 쉬게 해주는 날이었다. 12시간을 푹 자고 일어나자마자 근처 타이 식당에 가서 파파야 샐러드와 팟씨유를 먹었다. 맛있게 먹고 한국인이라고 하자 나갈 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해 준 귀여운 식당 주인 덕분에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했다. 'Wat Damnak'이라는 곳과 '왓 보'를 가는 게 오늘의 목표였다. 'Wat Damnak'은 관광객들이 많지 않은 곳이었다. 학교와 붙어있어서 현지 학생들이 공부도 하고 공원처럼 이용하는 사원이었다. 현지인이 된 척, 괜히 공원을 빙글빙글 돌면서 구경했다. 지금도 내가 나이가 많은 건 아니지만, 왜 학생 때 어른들이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예쁘다고 하셨는지 요즘 조금은 알 것 같다. 걸어서 '왓 보'를 갔는데 아쉽게도 공사 중 이서 그대로 쇼핑몰 '헤리티지 워크 Heritage Walk'로 갔다. 쇼핑몰에 가니 영화관이 있길래 시간이 딱 맞아서 '블랙 아담'을 봤다. 티켓 값은 2.5불이라 한국 돈으로 3천 원 정도밖에 안 되는데 팝콘이 3불이었다. 다행히 영어 버전이 있어서 신나게 보고 나왔다. 영화관은 우리나라랑 비슷하게 시원하고 좌석도 넓고 깨끗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비가 와서 쇼핑몰에 갇혀버렸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에어팟 한 짝을 주머니에 넣어놓았는데 어디로 간 건지 잃어버린 것이다. 다시 영화관으로 뛰어가서 에어팟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말하자 상영관으로 다시 가보라고 하셨다. 내가 갔던 상영관인 2관으로 들어가자마자 청소하던 직원이 나에게 바로 에어팟을 보여주면서 이거 놓고 갔지? 하고 하셨다. 고맙다는 말을 몇 번했는지 모르겠다. 쇼핑몰에서 비가 그치는 걸 기다리는 동안 괜히 뚜레쥬르가 있길래 가서 빵도 하나 사 먹어보고, 그동안 비가 그쳐서 다시 숙소로 걸어갔다. 혼자만의 시간을 제대로 즐긴 하루였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게 재충전하기에는 최고이다.

생각보다 깔끔했던 영화관과 쇼핑몰에서 만난 뚜레쥬르



 그리고 절대 잊지 못할 그날 밤. 서양 남자애들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새벽 3시 15분에 복도를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쳐서 깼다. 일어나서 시계를 보자마자 이게 무슨 꿈인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무슨 기둥 같은 걸 박자에 맞춰서 쿵쿵쿵 치는 소리부터 시작해서 와다다다 달리는 소리까지. 나가서 조용히 해달라고 할까 싶다가도 너무 과격한 소리에 괜히 싸움이 일어날까 봐 귀마개를 꽂고 잤다. 살면서 처음으로 귀마개를 꽂고 잠을 자봤다. 여행을 하기 전에 귀마개를 써본 적이 없어서 가져올지 말 지 정말 고민을 많이 했는 데 과거의 나에게 감사하다고 마음속으로 수백 번을 외치면서 잠에 다시 들었다. 이 날 심지어 호스텔 측에 소음에 대해 항의하고 호스텔 측에서 자기들이 해줄 수 있는 건 없다고 해서 억지로 호스텔을 옮기는 악몽까지 꿨다. 별 일이 다 있는 하루였지만 재충전을 완벽하게 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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