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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덕생 Aug 04. 2023

내가 꿈꾸는 숲을 위하여 6

스스로 고독화 하는 삶

혼술, 혼밥, 그런 주제들이 요즘 일상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냥 일상에서 그리고 자주 매스컴에 떠오르는 트렌드로 논할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견해의 차이 생각의 차이는 있겠으나, 고요함 속에서 혼자만의 분위기를 느끼며, 이름도 알지 못하는 와인을 캠핑컵에 부어 놓고 홀짝거리며 저녁노을을 맞는 그런 삶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별것 아니면서 스스로 자평하여 최대의 행복한 순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사람들이 합창하여 말하지만 행복의 지수는 스스로의 기준으로 만들어진다는 결론에 나도 동참의 표를 던진다.



햇살이 비춘 상태에서 자주 비가 뿌린다. 구름이 지난 간 자리에 무지개가 돋을 만 하지만 비만 뿌리고 다시 해가 뜬다. 그러나 마지막 세상을 비추고 떠나는 해이기에 힘이 없다. 그 저물어 가는 해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행복하다. 어둠이 세상에 깔리기 전 마지막으로 세상에 빛을 주고 떠나기에 그 여운이 더 가슴에 박힌다. 세상을 보는 눈은 그 순간의 풍경과 감정, 그리고 느끼는 분위기에 따라 묘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요즈음 새삼 더 많이 느낀다. 스스로 혼자가 되어 자연 속에서 자연과 동화되면서 느끼는 감정들은 상상 이상으로 풍성해지고, 나 스스로도 생활 속에서 부대끼면서 전혀 느끼지 못하는 감성들이 나도 모르게 솟아오르는 것에 스스로 놀란다.

그렇다! 부대끼는 생활전선을 떠난 스스로 고독화하고 자연과 호흡하는 삶을 살아보니, 오히려 가족애 대한 애틋함, 사랑하는 사람, 내  주변에 대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지고 그전에 느끼지 못한 애틋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삶이란 이런 건가 보다. 이제야! 예순이 넘어, 뒷전에 물러날 나이에 철이 드나 보다. 세상의 이치를 조금씩 깨닫나 보다..



특별한 plan이 나오기 이전에 일단 잘라 놓은 나무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앞으로의 일을 정했다. 잘려 쓰러진 나무들을 토막토막 잘라서 일정한 장소에 쌓는 것으로 말이다. 나 스스로 작업 목표를 정하고 그 일정에 따라 일을 해 나가는 단순한 작업이지만, 이렇게 노동의 신성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나도 놀란다. 똑같은 노동이라도 자의적인가? 아니면 타의적인가에 따라 엄청난 차이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에 앞으로의 남은 삶에 보탬이 되는 지혜를 얻고 간다. 하나 둘 쌓여가는 통나무들이  어느덧 내 키높이만큼 이르렀다. 통나무 산성이 만들어졌다.



삶의 일대기를 글로 쓴다는 것은 참으로 방대하고, 그리고 특별할 것도 없는 삶을 구구절절 장편으로 엮어 낸다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고, 엮어 내어도 별로 감흥이 없는 글이 될 것 같다. 그렇치만 살아가는 순간순간의 즉흥적인 느낌을 그때그때 글로 표현해 내고, 기록해 낸다면, 어쩌면 짧은 단상 단상들이 옥으로 엮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인생은 순간순간의 행복이지, 살아가는 내내 행복하다고 외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으니까? 이곳 나의 숲에서, 혼자서 조금씩 분에 넘치지 않는 일을 해가면서 이것, 저것 많은 생각을 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대해 되새김질하는 많은 시간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삶이란 계속 지속되고, 나는 좀 더 철이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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