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풀어가는 죽음학 이야기] / 영화 "디즈 파이널 아워스"
"지구 종말까지 12시간"
- 영화 <디즈 파이널 아워스, These Final Hours], 감독-잭 힐디치, 2013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철학자 스피노자가 한 말로 알려져 있지만, 그 근거는 없다고 한다. 당신이라면 내일 지구가 멸망하는데 사과나무를 심겠는가?
영화 디즈 파이널 아워스는 지구와 충돌한 운석으로 인해 인류의 멸망이 12시간 남은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운석은 북대서양에 충돌했고 그로 인한 거대한 불기둥 후폭풍이 주인공이 살고 있는 호주에 12시간 후에 도달할 예정이다. 영화는 종말을 맞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묘사하고 있다. 우선 폭력과 범죄를 저지르는 유형이 있다. 이들은 지옥과도 같을 지구 종말을 앞두고 이미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사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이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두 번째 유형은 남은 시간을 쾌락으로 보내는 사람들이다. 끝까지 즐기자는 거다. 이들은 과연 세상의 종말이 오기 때문에 쾌락을 좇는 걸까? 지금까지는 절제된 삶을 살아왔을까? 술과 마약이 판치는 말 그대로 광란의 파티를 즐기는 이들 중에는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차피 곧 죽을 목숨이라고 생각하니 할 수 있는 행동이었을 거다. 그들의 무모함 뒤에는 두려움이 깔려 있을 터이다.
지구 종말을 맞는 또 한 가지 유형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다. 불구덩이 속에서 자신과 가족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느니 차라리 고통 없이 삶을 마감하려는 유형이다. 내세를 믿으며 자신이 믿는 신에게 의지하고 회개할 것을 외치며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마지막으로 끝까지 살아보려고 지하벙커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구라는 행성 자체가 폭발로 사라지는 마당에 지하벙커가 무사할리 없다. 설사 벙커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지구 상에 모든 생물이 사라지는 마당에 벙커 속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오히려 살아남은 이후에 겪게 될 일들이 더 가혹하진 않을까? 하지만 조금이라도 죽음을 늦추고 생명을 연장하려는 모습은 인간의 본성일 수도 있겠다.
당신이 12개월 시한부라면 남은 1년간 무엇을 하고 싶은가?
당신은 어떤 유형이 될 것 같은가? 나의 죽음이 12시간 후라면 어떻게 살 것인가? 아니 남은 시간이 고작 12시간 정도라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표현보다는 무엇을 하고 보낼 것인가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그런데 만약 12시간이 아니라 12일 후라면 어떤가? 1개월 후라면? 12개월 후라면? 당신의 삶이 12개월 남은 시한부라면 남은 1년간 무엇을 하고 싶은가? 분명한 것은, 남은 1년의 시간은 우리가 살아온 지난 날들, 그러니까 어제와는 다른, 지난주와도 다른, 작년과도 다른, 5년 10년 전과도 다른 생각과 느낌, 감정과 행동들로 채워질 것이다. 시간을 좀 더 연장시켜보자. 당신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1년이 아니라 10년 후라면 어떨까? 당신에게 남아 있는 10년은 과연 지나온 10년과 다른 시간이 될까? 아니면, 크게 다르지 않게 될까? 10년이 아니라 20년, 30년, 40년 남았다면?
우리는 평소 죽음을 잘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평소 죽음을 잘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혹시 우리가 오늘을, 지금을 이렇게 사는 것은 죽음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앞서 소개한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에서처럼 우리의 잔여수명을 알게 된다면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하루 남은 삶과 10년 남은 삶, 20년 남은 삶은 과연 같을까?
죽음학에서 죽음과 죽음준비를 생각한다는 것은... 나와 우리 주변의 삶과 세상을 돌아보고 보다 온전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학에서 죽음과 죽음준비를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우리에게 죽음이 언제 다가올지 모른다는 아주 자연스럽고 상식적인 전제에서 나와 우리 주변의 삶과 세상을 돌아보고 보다 온전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던 역사 속의 그 누군가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는 것을 알기 전에 이미 사과나무를 심을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평소처럼 행동하고 지낼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죽음에 대해 늘 생각하며 준비해왔기 때문은 아닐까?
지금 당신의 생각, 결정, 감정, 그리고 행동은 죽음을 눈 앞에 두었더라도 그렇게 했을 생각, 결정, 감정 그리고 행동인가?
다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이 12시간 후에 죽는다면 남은 시간 무엇을 할 것인가? 질문을 바꿔보자. 지금 당신의 생각, 결정, 감정, 그리고 행동은 죽음을 눈 앞에 두었더라도 그렇게 했을 생각, 결정, 감정 그리고 행동인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