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가을밤 귀뚜라미 소리, 한 여름밤 논에서 우는 개구리 소리, 숲 속의 소쩍새 소리, 여름 한 낮 저 높이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 휴일 오후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뛰노는 아이들 소리, 처마밑 깡통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비 내리는 마당에서 피어나는 흙냄새 풀냄새, 초저녁 저 멀리 들리는 교회 종소리,
어릴 적 겨울날 시장골목 양 옆 하수도 구멍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증기와 비누향 섞인 특유의 냄새(그 물은 주로 주변 목욕탕에서 흘러나오는 물이었다), 출근길 토스트 가게에서 풍겨 나오는 마가린에 식빵 굽는 냄새, 대학 여름방학 때 엠티 가서 밤을 새우다 보면 새벽녘에 느껴지는 그 특유의 밤공기와 분위기...
윤동준 그날, 무엇을 느낀 것일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