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프레임의 “우리집 꼰대” 아빠의 반성문/보고서 영상을 보면서.. 아빠 되기도 어렵지만 꼰대라는 말은 듣지 말아야 하는데.. 난, 꼰대이지만 꼰대이기를 거부해 왔는데.. 지나가는 시간에는 장사가 없는 듯합니다. 꼰대에 대한 주제로 부모와의 관계를 리얼하게 영상에 담은 프로그램으로 꼰대는 듣지 않고 혼자만 이야기하며, 잔소리로 시작하여 훈계로 끝나는 권위적 모습이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누가 꼰대가 되고 싶어서 되며, 자신과 자식이 자라온 세대가 너무나 다르고 소통이 부재되면서 부모인 자신도 모르게 자식이 자신을 '꼰대'로 생각하게 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세대차이라고 하는 간격과는 속성이 다르겠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벌어진 틈은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나, 상대방의 이야기가 듣기 싫다는 이유로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물론 꼰대라 불리우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고 누구든 원해서 꼰대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꼰대라는 이름이 피해갈 수 없는 인생의 덧이라면 어떤 꼰대가 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꼰대를 가르는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으며, 상황에 따라 꼰대짓을 할 때도 있고 때로는 현명한 선택을 할 때도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면 사회적 판단을 내리는 방법이 변한다고 하며,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젊은 사람과 나이든 사람은 의사 결정 패턴이 서로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젊은 사람은 다양한 정보를 탐색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보내며, 나이가 든 사람은 기존에 이미 알고 있던 정보에 의존해서 빠른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답니다. 나이가 들면 주로 “범주요소(Category Factor) 기반의 판단”이라는 접근을 택하지만, 이 방법은 신속한 판단이 가능하고 인지적 노력이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답니다. 그러나 기존의 정보가 부정확한 경우, 급변하는 환경에서 잘못된 기존의 방법을 고수하거나, 변화에 민감하지 못한 상태의 결정은 틀린 판단을 할 수 있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들면서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툭~ 내던진 말에 상대방은 벙~~ 쩔거나, 어이없어 하는 일은 곳곳에서 종종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범주요소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음에 따라, 시어머니가 자기 며느리적 생각을 못하는 것처럼 꼰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으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는 변화에 대한 대응을 하지 못한 결과라고 보이며, 세상과 입장은 바뀌었지만 행동과 생각의 기준은 오래 전 익숙하게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을 활용하는 부분이 재정비되어 시대와 장소에 맞는 적절한 행위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꼰대와 개저씨가 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의 한 끗발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며, 대부분의 꼰대는 자신을 아재쯤으로 생각을 하고, 사람들은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한다고 합니다. 더불어 자신은 열린 사람이며, 자신은 꼰대질을 절대로 싫어하고 자신은 진정 꼰대가 아닐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은 쉽게 얻어지는 부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꼰대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꼰대들은 노답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게 될 것입니다. 꼴통인지, 꼰대인지 구분이 안되는 행보로 익숙해진 가치관과 방식에 안주하려는 경향들을 발견하면 자신이 꼰대로 무한 성장하고 있구나?를 인지하여야 할 것입니다. 꼰대 중에서도 아주 못난 꼰대는 따로 없지만, 꼰대이즘(ism)이라는 우리나라의 꼰대 문화는 영원히 유지될 듯하며, 자신의 꼰대적 유전자를 없애버린다면 멋있는 노년에 인기 있는 매력적인 분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왜? 꼰대여?? 하며, 조선시대 오리지널과 시대의 진정한 꼰대가 되기보다는 꼰대의 6하 원칙인 “Who-내가 누군지 알어?, When-왕년에, Where-어딜 감희, What-뭘 안다고, How-어떻게 나한데, Why-내가 그걸 왜? 등에 대해 항시 생각해보며 행동하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