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관이 바깥으로 모두 나와 마치 속을 다 드러내 보이는 듯한 특이한 건물 퐁피두센터를 찾았다. 파리의 3대 미술관으로 고전미술 작품의 루브르박물관, 근대 인상주의 작품의 오르세 미술관, 그리고 현대미술 작품의 퐁피두 센터를 꼽을 수 있다. 한 도시 안에서 미술사 전반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은 세계에서 파리가 유일하다한다.
아침부터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하고 이 한여름에 춥기까지 했다. 오후에나 올 거라던 비가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폭우와 홍수 경보까지 발행되었다. 미술관 안에서 시간을 보내기엔 좋은 날이다.
골목을 돌아서자 마주한 퐁피두는 미술관이라기엔 실로 충격적이었다. 마치 거대한 미래형 공장에 온 것 같았다. 건물 앞을 가로지르는 긴 유리투브 안으로 에스컬레이터가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온갖 파이프들이 건물을 에워싸고 있었다. 주위의 19세기 건물들 사이에서 퐁피두는 조화되기보다 어긋나고 동떨어져 보였다. 실험정신이 가득한 현대미술의 대표주자 다웠다. 파랑 하양 빨강 노랑 원색을 기본색으로 한 디자인이 프랑스 국기를 연상케 했다.
1977년에 획기적인 건축물로 주목받으며 문을 열었던 퐁피두 센터 Centre Pompidou는 현대미술 작품 5만 3천여 점 이상을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 대표 미술관이다. 연평균 관람객 3백만 명이 이곳을 찾는다. 내장을 다 드러낸 듯 배관시설이 모두 밖으로 나온 이 괴상한 모양의 건물 모습에 예술에 일가견 있다는 파리시민들도 처음에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나 보다. 결국 에펠탑처럼 찬반 논쟁이 오갔다. 그러나 에펠탑이나 루브르 피라밋처럼 퐁피두도 현재 프랑스인뿐 아니라 세계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인간은 낯설고 획기적인 것에 거부감이 먼저 생기는 걸까.
건물 안을 들어서자 기둥 없는 확 트인 공간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보통 기둥 안에 배관을 넣는 기존 건축물과 달리 배관이 밖으로 나가니 실내 기둥을 없앨 수 있었다 한다. 왼편으론 아래층엔 기프트샵이, 2층엔 놀이터가 있어 어른들만의 미술관이 아닌 아이들도 맘껏 즐기게 했다. 오른쪽엔 서점과 카페가 아래위로 있었다.
우리는 Permanant collection을 볼 수 있는 티켓을 샀다. 어른이 15유로였다. 튜브 안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마치 우주 기지를 오르는 것 같았다. 5층에 오르니 파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비안개 속에 멀리 에펠탑이 나타나고 오른쪽 언덕으로 몽마르뜨의 샤크레 쾨르 성당이 보였다. 앞으로는 노틀담대성당이, 그 뒤로 몽파르나스 빌딩이 성당 외엔 높은 건물이 별로 없는 파리에 덩그러니 홀로 높이 서 있었다.
현대미술작품은 아직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 박물관을 들어서며 조금은 마음의 각오를 했다. 퐁피두 현대미술관을 방문 리스트에 넣으며 J선배를 떠올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파리 간다 하니 퐁피두를 꼭 가보라 당부하셨다. 컨템퍼러리 아트 전문인 선배 덕에 현대미술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왜 이런 장르가 생기게 되었는지, 유튜브 강의까지 찾아 듣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 이해하기엔 태부족이지만 조금은 아는 것과 모르고 흘러가는 건 다르기에 기회 되는 데로 접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일까 비가 와서일까, 작품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보다 보니 5층 한 층만 관람하는데 3시간 가까이 걸렸다. 오디오 설명을 신청했으면 좋았겠다는 욕심까지 내면서. 티켓 살 때 오디오 가이드가 안 보여 무심코 들어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최신 버전으로 앱을 다운로드하여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거였는데 몰랐던 거다.
5층은 1905년에서 1965년 사이 아방가르드 운동을 포함해 현대미술의 토대가 된 작품을 전시했고 4층엔 1960년대 컨템퍼러리 작품과 the most forward-looking pieces as well as monumental and immersive installation 이란 긴 타이틀의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상설전시관은 정기적으로 작품을 바꿔 전시하고 있다.
전시장은 실험정신으로 가득했다. 왜 이런 작품을 만든 걸까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끔찍한 것도 많았다. 눈에 익숙한 기법의 작품엔 편안했고 실험적인 작품은 아직 낯설게 다가왔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작품을 보면서 미의 기준이란 뭔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가 현재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은 실상은 세상의 기준에 길들여진 시각 때문이 아닐까. 이념이든 예술이든 어떤 기준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 승자의 시선으로 쓰인 역사가 패자의 입장에선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듯. 기존의 미의 기준을 다른 각도로 바꾸어 보려는 시도가 현대 미술인 걸까. 하긴 미술사도 수없이 기준이 깨지고 바뀌고 하며 여기까지 왔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관람을 하고 있었다. 한참 관람에 열중하고 있는데 한국말이 들려 보니 딸 둘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가 아이들과 그림놀이를 하며 전시를 감상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노트를 들고 뭔가를 붙이고 있길래 자세히 보니 퐁피두에 전시되는 작품 사진을 노트에 붙이고 아이들이 그 작품을 찾으면 스티커를 붙이는 거였다.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 같아 어디서 난 워크북이냐 물었더니 엄마가 직접 만든 거란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예술품을 접해주려 노력하는 엄마의 지혜에 미소가 지어졌다. 예술의 힘을 일찌감치부터 교육하는 프랑스에 결코 뒤지지 않을 한국의 미래가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