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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숙 Monica Shim Oct 13. 2023

13. 모네의 정원 지베르니 Giverny

파리 프랑스 8.1

  수십 개의 시계를 붙여 만든 시계탑이 역은 시간 여행을 하는 곳임을 알려주듯 생라자흐Saint Lazar역 앞에 서있다. Vernon행 기차를 타고 모네를 만나러 지베르니로 간다. 생라자흐역은 고전형식의 외관과 다르게 내부는 현대식으로 깔끔했다. 역 입구엔 붉은색으로 'PARIS' 사인판이 크게 서있어 파리를 찾는 관광객이 인증사진 찍기가 좋아 보였다.


  어디선가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흘렀다. 역내에 놓인 피아노를 한 남자가 연주하고 있었다. 연주실력이 대단했다. 사람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연주에 빠져 들었다. 바삐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하던 역내가 순간이동을 해 음악회장으로 바뀌었다. 역이나 공원에 피아노가 있어 세계적인 명연주가의 연주를 우연히 만날 수 있는 게 파리였다. 나도 독수리 타법일지라도 '나의 살던 고향은'을 연주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기차시간에 여유가 있어 바게트와 크로와상을 사서 스타벅스에 자리했다. 창가에 앉아 역을 오가는 사람을 구경하며 사진으로 담을 영상을 그렸다. 프랑스 카페에선 투고 커피를 시키면 정말 조그만 종이컵에 담아줘 양이 부족했는데 역시 미국 커피숍은 파리에서도 인심이 넉넉했다.


 미국에 산지 20여 년이 되니 어느덧 미국문화가 편하게 느껴진다. 낯선 곳에서 맥도널드나 스타벅스를 만나면 반갑기까지 하다. 더군다나 영어로 주문할 수 있으니. 온통 불어로 된 메뉴판을 보며 뇌에 지진이 일어나려 할 때 영어로 된 메뉴판을 갖다주면 감사하기까지 했다. 미국선 골치덩이 였던 영어가 파리에선 친근감이 느껴지다니 미국서 오래살긴 살았나보다.


 기차는 제 시간에 출발해 미끄러지듯 역을 떠났다. 전기로 운행되는 기차라 소음이 현저히 적었다. 앞자리에 멀리사, 몰리, 케이트 세자매가 앉았다. 그들도 지베르니로 가는 중이란다. 멀리사가 우리에게 불어를 하느냐고 물었다. 영어를 한다 했더니 고향사람을 만난 듯 반가워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매들과 파리에 처음 왔는데 불어를 몰라 고생이라며 영어 하는 사람을 만나니 이리 반가울 수가 없단다. 미국이 제2의 고향이 되었다.


 구름사이로 간간이 햇살이 비치며 기차가 달린다. 모네의 집은 햇살 반짝이는 날 방문하면 더 아름답다고 했다. 모네의 그림에 배경이 된 정원과 수련 핀 연못은 그가 그림으로 그리고 싶어 직접 연못을 만들고 꽃을 심은 거라 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농사지을 물도 부족한데 연못을 만드는 모네를 비난했다. 그는 사람들을 설득해 원하는데로 만들었고 작품으로 남겨 후대에까지 전했다. 때론 가장 이기적임이 가장 이타적일수 있단 말이 떠올랐다.


 강물은 뒤로 흐르고 기차는 강을 거슬러 올랐다.  물 위에 윤슬이 아름답게 빛났다. 곧 모네를 만난다. 베르농역 앞에서 지베르니까지는 셔틀버스나 꼬마기차, 자전거로 갈 수 있다. 날씨가 약간 춥기도 해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기차시간이 오후 8시라 마지막 버스 시간을 물어야했다 7시란다. 다행이다. 버스 시설이 좋다.


 베르농은 오래된 집과 현대식 집들이 어우러져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차창으로 APPA Chicken 간판이 보인다. 혹시 우리말인가 하고 보니 아래에 아빠치킨이라고 한글이 적혀있다. 반갑다. 돌아가는 길에 들러서 먹고 가자고 남편이 말한다.


 십여분 달려 지베르니에 도착했다. 시냇물을 건너고 해바라기 밭을 지나고 돌담을 돌아 모네의 집 앞에 섰다.  비밀의 화원을 들어서듯 작은 문을 통과하니 천상의 꽃밭이 펼쳐졌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구멍을 통과해 미지의 세계를 만나듯 모네의 정원을 만났다. 구름에 숨어있던 해가 환히 얼굴을 내밀고 정원을 비추었다.


 모네의 작품 속 연못이 궁금했다. 빛에 따라 달라보이는 그의 연못이 지금은 어떤 빛을 만나고 있을까. 그림으로만 만났던 장소를 직접 본다는 게 가슴 떨리게 했다. 모네의 연못은 그림 그대로 수련이 꽃을 담고 떠있고 초록색 다리가 둥글게 연못을 넘고 있었다. 다알리아 별수국 릴리 해바라기 이름을 알수없는 많은 꽃들이 연못 주위를 감쌌다.


 모네의 그림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연못으로 꽃과 나무와 둥근다리와 흰구름과 파란 하늘도 걸어 들어왔다. 이대로 아침을 맞고 저녁을 맞으며 그와 함께 빛에 따라 달라지는 연못의 모습을 모두 만나고 싶었다.


 모네는 어린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오전 두시간 오후 두시간의 수업을 하던 학교가 그에게 감옥처럼 느껴졌다한다. 얼른 밖으로 나가 아름다운 자연을 그리고 싶어 수업에 집중을 못하고 창밖을 보며 상상을 했다.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기 어려운 아이였다.


 당시의 화가들은 밖에 나가 자연을 그리지 않았다. 모두 아틀리에 안에서 인물을 그리거나, 경치를 그리더라도 실내에서 상상해 그렸다. 모네는 당시의  틀을 깨고 밖으로 나가 빛에 따라 달리보이는 자연을 표현했다. 친구들과 이젤을 들고 나가 종일 밖에서 그림을 그리곤 했다.


 연못을 지나 모네의 정원으로 걸었다. 만발한 꽃 위로 벌들이 윙윙 소리를 내며 날았다. 지금까지 본 프랑스 정원은 마치 사열하는 군인처럼 같은 키 같은 넓이로 가지치기를 인공적인 분위기 였다. 그에 반해 모네의 정원은 높고 낮은 꽃들이 옆옆이 자연스레 어우러지며 여러 색깔의 꽃들이 제각각의 모습을 자유로이 드러내었다. 개성과 자유를 사랑하는 프랑스의 모습이 바로 그의 정원과 닮아 있었다.


 1840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빛은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의 큰 획을 남긴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는 1883년부터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파리에서 약 80km 떨어진 지베르니에 머물며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내 그림과 꽃 이 외에 이 세상의 그 어느 것도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없다.”  그의 정원은 아름다운 천국을 연상시킨다. 오늘날까지 모네의 정원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며 매년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


  정원 한편에 동양인 아가씨와 서양인 아주머니가 벤치에 앉아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다가가서 그림을 좀 봐도 되냐 물으니 기꺼이 보여주었다. 딸과 여행을 다니며 스케치를 한단다. 암스텔담에서 왔다는 엄마는 딸이 그림을 아주 잘그린다며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입양한 딸의 중국이름을 그대로 부르고 있었다. 이름은 샤우샤우며 중국말로 morning dawn이란 뜻인데 정말 아름답지 않냐고 묻는다. 샤우를 두번 반복했으니 뜻이 강조되고 선율이 맞아 더 예쁘단다. 자기 이름은 도시란 뜻의 재미없는 시타Cita 라 했다. 마주보며 웃는 두 사람은 무척 닮아 있었다. 꽃이름을 설명해주고 해바라기를 더치어로 Sun Eye라 부른다며 진짜 태양의 눈처럼 보이지 않냐며 웃는 그녀의 미소가 햇살처럼 따뜻했다. 저런 다정한 엄마에게서 자란 딸 샤우샤우는 같은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사람을 대하며 살 것이다. 빗방울이 듣자 스케치북을 접고 정원으로 걸어가는 모녀의 모습이 꽃보다 아름다웠다.


 모네의 집은 살던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부엌과 침실 옆 초록 창문으로 아름다운 그의 정원이 보였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꽃들을 먼저 만나고, 설겆이를 하다 꽃을 볼수 있는 집에 산 모네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었으리라. 아름다운 자연 속에 살며 자연의 빛을 매일 그렸으니 더한 행복이 있으랴. 나이들어서의 얼굴은 자신이 살아온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했다. 밀짚 모자를 쓴 모네는 맘씨 좋은 옆집 아저씨 모습이었다.


 그의 무덤을 찾아가 아름다운 집과 그림을 보여줌에 감사 인사를 하고 아담한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지베르니를 떠났다. 베르농 기차역에 도착하니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기차시간까지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아빠치킨을 먹고가자던 남편이 피곤한지 비도 오니 바로 오는 기차를 타고 돌아가잔다. 티켓박스에 그래도 되냐 물으니 괜찮단다.


 파리행 기차가 서서히 출발했다. 굵은 빗방울이 차창을 노크했다. 모네가 차창을 두드리며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바이 모네, 당신의 아름다운 정원 잘봤어요."  뒷좌석의 아가씨들도 동시에 "바이 모네" 하고 외쳤다. 차창으로 꽃으로 가득한 모네의 정원이 스쳐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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